매년 마지막 설교는 늘 에벤에셀 하나님입니다. 작년 마지막 칼럼도 아마 에벤에셀 하나님 이었을 것입니다.이유는 여러번 밝히기는 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하기도 하고 가장 힘들기도 했던 신학대학원 시절, 총장이셨던 서정운 총장님은 학기의 마지막 설교를 늘 같은 제목, 같은 본문, 더구나 늘 똑같은 원고를 가지고 나오셔서 설교를 하셨습니다. 내용을 바꾸지도 않고, 하는 설교는 성의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늘 그 시간에 총장님은 처음 설교를 하듯이 하셨고, 예배를 드리는 학생들도 마치 큰 전쟁을 치루고 예배를 드리듯이 감격가운데 그 예배를 드렸습니다.
전도사들의 사례비라는 것이 고작 30만원에서 50만원이고, 등록금은 세배에 가깝습니다. 거기다가 대부분 가정을 가지고 있기에 산다는 것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학교주변의 좁디 좁은 방에서 신혼살림을 차린 친구들부터,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주말부부를 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삶이 고달팠습니다. 거기다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써야하는 레포트에, 교회에서는 모든 교육전도사가 마치 머슴처럼 모든 일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나마 대형교회에서 사역하는 전도사들은 본인들의 사역만 하면 되었지만, 의리로 자란 교회를 지킨다든지, 하나님이 부르신 곳으로 간다고 개척교회에서 봉사하던 전도사님들은 거의 부목사에 가깝도록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늘 잠이 부족하고, 혹이나 늦게 일어나면 주의 길을 가겠다는 사람이 이래도 되나 싶어서 죄책감에 사로잡히곤 했습니다.
저는 그때 세곳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교회, 선교단체,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아내가 둘째를 가지면서 일을 그만두어야 했기에 더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때 가졌던 마음은 빨리 방학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습니다.
서로를 격려하며, 형편이 나은 전도사들이 사례비를 좀더 받으면 그것 가지고 삼겹살 사서 기숙사의 못 먹는(?) 시골교회 목회자들과 함께 옥상에서 삼겹살을 먹었습니다. 그나마 친한 몇사람과만 먹어야 했기에 다른 사람이 올라오거나 하면 미안함과 어색함이 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날 기숙사에 살던 전도사님이 영양실조로 쓰러지면서 문제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기숙사 밥이 나오지만, 스트레스와 여러가지로 견디지 못하고 못먹다 보니 영양실조가 걸린 것입니다.
밤마다 주기철 목사 기념탑에서는 ‘주여’를 외치며 기도하는 분들과, 한경직 목사 기념예배당에서는 새벽마다 돈달라는 전도사들의 하염없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기도 듣다가 교수님이 가슴 아파 본인 가지고 있는 돈 두고 오고, 형편 나은 전도사들이 지갑을 열어야 했던 시간들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종강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에벤에셀 하나님’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 이라는 설교가 그렇게 절절하게 다가올 수 없습니다. 설교는 길지도 않으십니다. 늘 20분을 넘기지 않으시고, 지금이나 20년 전이나 여전히 조근조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듣다가 그냥 통곡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 도우시는 하나님을 느낀다는 것이 꼭 힘들어야 느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와 마음이 어려울때, 사람 때문에 힘들 때 등 각기 다른 어려움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간을 넘어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은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것입니다.
에벤에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