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송인서 전도사입니다. 지난 주에는 드디어 우리가 기다리던 단비가 내려 메말랐던 대지를
흠뻑 적셨습니다. 내리는 단비를 보면서 우리 마음을 촉촉히 적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떠 올리며 교회 사무실에서
혼자 흐뭇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김인철 목사님께서 떠넘기고(?) 가신 칼럼을 쓰려니 마음 한편이 다시금 메말라짐을 느낍니다. 저의 단비이신 김목사님께서 안식월을
마치고 속히 오셔서 제가 지고 있는 이 무거운 짐들을 가져가 주시기를 바라고 또 바래봅니다. 마라나타!
속히 오소서! 오늘은 니케아 신경(the
Nicene Creed)이 말하는 교회의 네 가지 정의들 중 첫번째 정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하나의 교회를 믿습니다”(Credo Unam Ecclessiam). 교회가
‘하나’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의 개별교회를 떠올리곤 합니다. “오렌지가나안장로교회가 당연히 하나지 그럼 둘인가?”라고 반문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성서에서 교회가 ‘하나’라고 말할 때에는 교회가 ‘한 몸’임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 ‘한 몸’인 교회는 바로 머리되신 주님의 몸 된 공동체를 말합니다. 우리의 몸을 떠올려 봅시다.
한 몸이지만 여러 지체들이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한 몸이며 여러
지체들이 연결된 유기적 공동체, 아니 유기적 생명체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2절은 교회의 한 몸됨을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고린도교회는 유대인과 헬라인, 자유인과 종, 남성과 여성
등 당시 다양한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교회 밖 사회에서는 넘을 수 없는 신분과 계층의 차이 때문에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는 달랐습니다. 모든 사회적, 계층적, 경제적 차이를 극복하고 하나됨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고린도교회와 같은 초대교회의 선명한 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의 교회의 역사는 교회의
비전인 하나됨의 역사라기보다는 안타깝게도 갈등과 분열의 역사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한 몸이었던 교회는 1054년 로마 가톨릭 교회와 동방 정교회로 공식 분리되었고,
16세기 종교개혁이후 개신교의 탄생으로 또 다시 갈라졌습니다. 그 후 개신교회는
여러 교단들로 나뉘어졌고, 특별히 한국의 장로교회는 해방 이후 일어난 세 차례 큰 분열들을 통해 갈라졌으며,
현재는 한국의 장로교단들의 숫자를 공식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나뉘어져 있는 상황입니다. 미국의 많은 한인이민교회들 중에서 갈등과
분열의 아픔을 한번도 겪지 않은 교회들이 손에 꼽을 만큼 드문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교회의 ‘하나됨’은 이미 우리가 성취한 업적이
아니라 우리가 여전히, 그리고 아직도 추구해야 할 목적이요 나아가야 할 비전입니다. 고린도교회는 교회의 하나됨을 위한 가장 중요한 일을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몸 가운데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고전12:25-26). 서로를 돌봄으로서
교회의 하나됨을 함께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오렌지가나안공동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