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새벽,
교회로 운전하고 가는 중에 하나님께서 질문하고 제가 대답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정말 하나님이 물으셨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아니고, 제 안에 마치 하나님께서 물으시는 듯한 생각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침 묵상하는 것이
요한계시록이어서 더 그랬나 봅니다. “인철아,
마지막 때를 살면서 네 자식들 내가 바치라고 하면 바칠 수 있겠냐?” 누군가에게는 정말 어려운 질문이겠지만,
저는 웃음이 났습니다. “하나님 물어 보실려면 진작 물어보시지...
아이들에게 직접 물어보셔야 해요. 이미 법적 성년이 되서 제가 하나님께 바친다 해도
아이들이 아니라 하면 저는 법적으로 아무런 능력이 없어요. 만약에 아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예스라 하면 저는
박수는 쳐드릴께요” “아 내가 조금 늦었네.
그건 그렇고 너 가진 것 다 나에게 바칠 수 있겠냐?” “아니 하나님 뭘 그렇게 주신 것이 있다구요.
하나님 뭐요? 집이요? 아니면 통장에 있는거요?
그것 가지고 싶으세요? 제가 할만큼 했잖아요. 하나님 도대체 원하시는 거에요? 제 목숨 말씀하시는 거에요? 그만큼 아팠으면 됐죠. 또 뭐요?” 괜시리 짜증이 올라옵니다.
하나님은 마치 제 속을 다 들여다 보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저의 실체입니다.
지난 주부터 Cts 라는 기독교방송에서 중보기도를 인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않은 상태로 다른 분들을 위해 중보기도하려고 하니 두렵고 떨려서 일단 하나님게 Deal을 했습니다. “하나님 마음대로 하세요. 대신 오늘 기도하는데
막히지만 않게 해주세요. 이건 생방송으로 나가는 것 아시죠. 저 기도하다가
잘 안되면 하나님망신, 교회 망신입니다” 하나님이 응답을 바로 하셨습니다.
“너 좀 그렇다.
안되면 네 망신이지 왜 내 망신이냐?” “하나님의 아들이 잘못되면 하나님도 망신이고
손해시잖아요.
아니 하나님 오늘 왜 이렇게 까칠하게 나오세요. 저 조금만 불쌍히 여겨 주세요.
저 요즘 정말 힘들어요” 하나님이 봐주셔서 그런지,
첫날 방송이 무사히 끝났습니다. 가끔 하나님과 밀당을 합니다. 밀당의 고수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이기겠어요. 그런데, 늘 보면 하나님이 저를 잘 아시기에 져주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