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기간 동안 소설도 읽고, 수필도 읽고, 신앙 서적도 읽었는데, 대략 50여 권이 넘도록 읽었습니다. 읽을 땐 잘 몰랐는데, 눈이 더 안 좋아졌고, 강대상에 서면 뒤까지 잘 안 보여 안경은 새로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거기다가 집사람에게 “뭐라고?” 묻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하도 헤드폰을 끼고 살아서 그런가 싶기도 합니다.
앞을 보면서도 뒤에 누가 있는지를 아는 감각을 가진 사람을 보면 ‘뒤에도 눈이 달렸다’라고 말하고 귀는 두 개인데 사방에서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 ‘귀가 열 개는 되는 것 같다’라고 말을 합니다. 감각이 그랬던 적이 있었는데, 하나님이 다시 그런 은혜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바라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성가대 찬양 후, 친교의 시간에 저는 한 줄씩 가서 인사를 합니다. 오랜만에 인사를 하다 보니, 끝까지 가서 인사를 드리는데, 그땐 그 줄에만 신경을 쓰려고 합니다. 한 손으로는 교인 손 붙들고 눈으로는 다른 분을 쳐다보는 것도 예의는 아닌지라, 가능하면 다른 곳을 안 보려고 노력합니다. 몸이 불편하신 손윤희 권사님이 3주 전 전화하셔서 “내일 목사님 제가 꼭 교회에 나갑니다”라고 말씀하신 주에 결국 몸이 따르지 못해 못 나오셨습니다. 권사님은 오랫동안 병원에 계셨고 이제 겨우 걷기 시작하셨으니 오시기가 쉽지는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2주 전에 권사님이 오셨는데, 제가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전에는 전체 예배를 집례하기 때문에 누가 오셨는지 대충은 아는데, 요즘은 설교시간에나 올라갔으니 권사님이 오신 것을 몰랐습니다.
예배 후, 나오셔서 인사를 하시는데, 권사님이 “목사님 이름을 열 번도 더 불렀는데, 저를 안 쳐다보셨어요”라고 말씀하시는데, 얼마나 죄송하고 미안했는지 모릅니다. 권사님이 열 번이나 불렀는데, 제가 듣지 못하니 얼마나 속상하셨는지 보자마자 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오랜만에 오니 눈인사하시는 분들, 말씀하시려고 부르시는 분들, 특히 어른들은 더 하십니다. 그런데, 제가 한 분에게 집중하다가 듣지 못하고, 고개를 안 돌리면 몇 번 부르시다가 마음 아파하십니다.
요즘 하나님께 우스갯소리로 이런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뒤에도 눈 하나 만들어 주시고, 귀는 동서남북 사방에 들리도록 해주시지 그러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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