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자인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습니다. 서자가 양반인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것이 그 당시 법도였고 분위기였습니다. 아버지는 홍길동이 아버지라 부르길 원했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아시안들이 증오범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밤거리 다니는 것이 두렵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누가 해코지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엄청나게 많이 있을 것 같은 증오범죄 신고율을 2020년보다 훨씬 더 줄었다고 지난 5일 자 중앙일보가 말하고 있습니다. 왜 매스컴에는 아주 심각한 것, 증오범죄 외에는 안 다루는 것일까요?
이유는 혹이나 증오범죄를 일으키는 분들이 대부분 흑인이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참 이상한 것은 백인들이 하는 증오 행동은 연일 매스컴에 나오는데, 폭력을 동반한 증오범죄가 잘 나오지 않는 이유는 참 이상합니다. 그것을 굳이 피부색을 언급할 필요는 없다고 알고 있지만, 백인들이 저지르는 증오는 위협적이고 강압적이라면 흑인들에 의해 나타나는 증오범죄는 대부분 갑자기 나타나는 폭력적인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매스컴은 폭력적인 증오범죄를 잘 안 다룹니다.
목요일에 있는 복음방송 중보기도를 위해서 자료를 준비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비상사태까지 선포한 ‘원숭이 두창’에 대한 이야기가 분명히 2주 전까지는 대부분 동성애자에 의해서 퍼져나간다고 나와 있다가 이것이 혐오를 부추긴다고 하며 그 이야기가 사라졌습니다. 바이러스에 대해 쉽게 전염될 수 있는 집단을 보통 고위험군이라고 말하는데, 거기에도 동성애자들이 빠졌습니다.
자료를 준비하다 보니, 98%가 남성들이 걸립니다. 25에서 45세의 남성들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절대다수, 즉 90% 이상이 동성애자입니다.
아이들이 걸렸다고 하였는데, 그 아이들은 동성애자 가정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공포하지 못하고, 특정한 집단에서 대부분이 걸렸다고 하면 이건 혐오를 부추기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분들이 고위험군이라고 한다면 모이지 못하도록 만나지 못하도록 해야 이 질병이 퍼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데, 어느 정치인도, 방송도 그 말은 할 수 없습니다.
혐오에 관련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데이터가 정확해도 말할 수 없는 시대, 인권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인권이 없는 시대를 사는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한 낙태할 권리를 이야기하며, 배고픈 동물들의 고통을 아파하며 목숨 걸며 데모를 하지만, 정작 배 속의 아이는 어떻게 죽어도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이런 시대에 잘못 목소리를 내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다는 것이 왠지 홍길동전을 읽는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제가 비정상적인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