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기 집사님은 말을 하기 시작하면 참 재미있는 분이시지만, 말을 붙이기 전까지가 힘든 분이었습니다. 그런 정명기 집사님과 유난히 친했던 분이 계셨는데, 바로 곽병만 장로님이셨습니다. 곽병만 장로님이 안 친한 분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곽 장로님이 유난히 정명기 집사님이 혼자 계시지 않도록 옆에 계실 때가 많았습니다.
정명기 집사님이 돌아가신 밤, 누구의 전화도 받고 싶지 않아 꺼놓은 전화기엔 장로님의 음성이 담겨 있었습니다.
“걱정돼서 전화했습니다. 괜찮으시냐?”고 물으셨지만 녹음된 목소리는 장로님이 더 안 좋으신 듯했습니다. 장로님도 갑작스러운 집사님의 죽음을 받아들이시기가 너무 힘드셨던 것입니다.
지난 주일날 “목사님 부탁할 일이 있습니다”. 장로님이 어지간하셔서는 안 쓰는 표현이시라 “무슨 부탁이신 데요”라고 여쭈었더니, 이번 장례예배 때 장로님께서 특송을 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조가를 부르시겠다는 그 부탁은 들어드리기가 너무 어려워 ‘이미 다른 분에게 부탁드렸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몰라서가 아니고 자신 같은 사람이 찬양하고 난 후 잘하는 분이 하면 더 은혜로울 것 아니냐 하시는데, 무슨 마음으로 말씀하시는지 알아 생각해 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바뀌시겠지 생각했는데, 전혀 달라지지 않으셨습니다.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장로님의 마음은 알겠는데, 이것이 예배이고, 조문객들 입장도 생각해야 할 것 같아 고민을 많이 하다가, 결국 돌아가신 분을 가장 잘 이해하는 분이 찬양하시겠다고 하는데 하고 결국 장로님의 이름을 순서지에 넣었습니다. 순서지엔 넣었지만 인쇄하기 전까지 시간이 있으니 장로님 혹이나 마음이 바뀌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말씀드리고는 그때부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금요일 저녁에 장로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아무래도 못할 것 같습니다. 생각과 현실이 잘 안 맞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을 하셔서 결국 장로님은 조가를 내려놓으셨습니다.
참 기가 막힌 조가(?)를 들을 뻔했는데, 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장로님을 위해 참 멋진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장로님이 조가를 부른 것으로 하나님이 카운트하시고, 저는 들은 것으로 카운트하시고….”
교회는 늘 이런 고민 하나하나에 울고 웃고 합니다. 부르지 않은, 그러나 목사의 가슴에 울린 곽병만 장로님의 진정 어린 조가가 칼럼 쓰는 내내 아쉽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