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있는 저희 가족은 다섯 명입니다. 큰아들 예석이는 군인이고, 딸 예림이는 간호사이고, 막내 예준이는 공부보다는 노는 것에 열중하는 개구장입니다. 미국 생활이 다 그렇듯이, 2013년 큰 아이가 대학을 가면서 방학때 잠시 함께 하는 것 빼놓고는 함께 지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 한국 군대를 가라는 명령에 말없이 순종한 예석이가 어른이 되었다고 느낀 것은 한국 군대를 다녀오고 미군 군대에 들어가기 위해 다시 ROTC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독일로 떠난 지 2년이 지나 지난 7월 7일 일년 반 동안 미국에서 근무하기 위해 이쪽으로 왔습니다. 독일을 떠나 근무지를 선택할 때 이것이 우리와는 마지막으로 함께 지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캘리포니아 근무를 지원했는데, 샌프란시스코에서 프레즈노로 그리고 LA로 계속 근무지가 변경되더니 결국 Corona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LA에서 근무할 땐 교통체증이 너무 심해, 당연히 LA에서 사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코로나는 당분간 집에서 출퇴근을 하기로 해 10년여 만에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딸아이는 25년이 되도록 집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대학을 다녔고, 지금도 집에서 출퇴근을 합니다. 컸다고 가끔 말을 안 들어 “너 나가 살아”라고 말하면 “아빠 정말이야? 그 말 후회 안 해?”라고 도리어 협박을 해서 꼬리를 내리고 맙니다.
우리 예준이는 형이 대학을 떠날 때 함께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엄마가 우는 것을 보고는 “방학하면 올 꺼니까 울지 말라”고 위로하였는데, 형이 없는 세상이 얼마나 편한가를 그 이후에 만끽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예준이의 관심은 형이 언제 집을 떠나느냐는 것입니다. 어차피 1년 반이 지나면 다시 돌아와서 함께 살기는 힘들텐데 말입니다.
10년에 만에 모여 지내다 보니 차량 스케줄부터 조정해야 합니다.
예석이가 독일에서 타던 차가 오려면 8월말이나 된다고 하니, 서로 비는 날 차량을 공유합니다. 불편한 것 같은데, 재미가 솔솔합니다. 예준이의 걱정도 덜어졌습니다. 이젠 서로 시간이 바빠 얼굴을 맞대고 함께 식사할 시간도 없습니다. 빨래가 많아집니다.
화장실 사용도 서로 비껴 나갑니다.
불편한 것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그런데 행복합니다. 아들은 우리 생각해서 있어 주는 것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한국 가면 엄마 옆에 있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저와 같은 마음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가족이 함께 있을 때 참 좋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저희와 있는 시간이 좋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