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전 수요일부터 식사를 못하시더니 지난 목요일(16일) 오후 1시, 김광철 목사님이 정말 잠든 듯 한 주일만에 돌아가셨습니다. 아주 누워 계신 모습 그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한 주전 수요일, 사모님은 늘 하셨던 것처럼 새벽에 신문을 목사님께 드리는데, 그날따라 일어나지 못하시고 계속 누워 계시더니 갑자기 하늘을 향해 크게 두 번 외쳤다고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외치신 그 말씀이 세상에서 말씀하신 유일한 말씀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의식은 있으신데, 말도, 식사도 못 하셨습니다. 그리고 딱 일주일 누워계시다가 살도 많이 안 빠지신 상태로 그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의 삶이 복된 것은 사모님 때문이라 할 것입니다. 일제 시대에 사모님은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 목사님은 강제징용을 피하시기 위해 얼굴도 모르는 채로 1944년에 결혼하셨습니다. 두 분 모두 10대의 일입니다. 얼굴도 보지 않고 한 결혼이 목사님 인생에 가장 복된 일입니다. 그렇게 한 결혼, 목사님은 김순성 사모님과 무려 77년을 함께 사셨습니다. 사모님은 다른 분들에게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하루 세끼 다 드시는 목사님을 위해 돌아가시기 전까지 식사를 준비하였습니다. 계산을 해보니 84,315끼를 준비하셨는데, 많이 양보해도 지금까지 8만여 회의 식사를 김순성 사모님에게 받으셨습니다. 거기다가 마지막에서는 치매가 오셔서 식사를 드셔도 “밥 달라” 하시는 일이 참 많았습니다. 아마 다른 분 같으면 도망갔을지도 모를 일을 그 일을 77년 동안 사모님은 묵묵히 수발을 다 드셨습니다. 목사님의 복은 자녀들입니다. 자녀들 모두 믿음의 자녀들로 성장해서 각자의 자리에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살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복은 찬양하는 목소리입니다. 서울대 성악과를 합격 하시고도 신학으로 삶을 돌리신 목사님... 그래서인지 아주 오랫동안 학교 음악 선생님으로 교목으로 사셨습니다. 80이 넘으셔도 늘 연습을 하셔서 오랫동안 테너의 음역을 간직하실 수 있었습니다. 함께 찬양하기를 원하셨고, 집에서도 찬송가를 복사해서 같이 부르며 즐거워하셨습니다. 이제 목사님 평생 하나님 찬양하시는 일을 드디어 이루셨습니다. 하나님 나라 가면 노래 잘하는 사람이 가장 대우받는다고 하는데 하늘 성가대 테너에 오디션 없이 들어가셔서 노래하고 계시지 않을까요?
복된 목사님의 죽음은 아름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