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면서 추석이나 설날이 다가오면 우리 집은 더 조용해졌습니다. 남들처럼 시골로 내려가는 일도 친척들이 모여 북적북적하는 그것을 경험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친척이라고는 아주 먼 5촌이 전부였고, 친척들 대부분은 이북에 계셨고, 어머니는 유일한 오빠가 계셨는데 당시로써는 워낙 유명한 작가셨기 때문에 그런 명절이 더 바쁘신 분이셨습니다. 사실 바쁘시기도 했지만, 그보다 예수를 안 믿는 외삼촌은 목사인 아버지를 부담스러워 하셨고, 실제로 나이도 아버지가 외삼촌보다 더 많았습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친척들도 대부분 황해도에 그대로 남아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고향, 황해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좋다, 인심이 좋다, 먹을 것이 가장 풍부하다. 어릴 적 엄마의 고향, 황해도 안악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과 아무리 노력해도 갈 수 없는 곳이 있다면 어떨까요?
어머니의 고향, 황해도는 아무리 노력해도 갈 수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런 상태로 어머니는 90세가 넘었습니다.
이번 한국 방문 중 목적 하나가 어머니 모시고 황해도가 눈앞에 보이는 강화도 방문입니다.
어느 분이 강화도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머니를 모시고 강화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민통선 넘어 망향대에 올라가면 바로 황해도가 눈앞에 보입니다. 그리고 그 지역에는 황해도가 고향인 분들이 사는 마을이 있고, 황해도식 냉면을 파는 음식점들이 있습니다.
워낙 어릴 적부터 냉면을 많이 먹었던 터라 어머니 모시고 형제들과 함께 황해도식 냉면을 대부분 사리를 시켜 곱빼기로 먹었습니다. 그리고 힘든 어머니를 모시고 망향대에 올랐습니다. 황해도가 가장 가까이 보이는 곳….
설치된 망원경은 얼마나 정교한지 황해도의 연백도시가 바로 눈앞에 펼쳐졌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까지 보였습니다.
갈 수 없는 어머니의 고향은 그렇게 가까웠습니다.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
하늘의 구름이 엄마의 마음을 아는 듯 외로운 엄마를 폭 감싸는 듯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