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이성은 목사님이 플로리다에 담임목사로 나가시면서, 후임으로 오신 분이 이우리 목사님이셨습니다. 여러명의 후보가 있었는데, 당시 리노에 있는 이우리 목사님이 저희교회에 오셔서 동역하시게 된 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섭리셨습니다.
이우리 목사님....
이름이 ‘우리’다 보니 절대로 잊지 못할 이름인데, 그럼 저는 무슨 목사냐 처음부터 교우들이 고민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기도하실 때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목사님과 함께 하여 주옵소서” 그러면 이우리 목사님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 같아, 참 미안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낸 생각이 저는 ‘일 우리목사님’, 이우리 목사님은 ‘이 우리 목사님’으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이우리 목사님과의 만남..
2019년 6월에 저는 척추협착으로 더 이상 서서 설교하기라 어려운 지경이라 이우리 목사님이 부임한지 2주 만에 저는 한국에 수술하러 나가 두 달여를 한국에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온지 2주만에 교회의 모든 일을 감당해야 했는데, 얼마나 잘하셨는지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목사님의 여러 장점중 하나가 바로 ‘순발력’입니다. 그리고 상황대처 능력이 엄청나게 빨랐습니다.
목사님은 성격테스트에 나오는 담즙질의 사람입니다. 추진력이 엄청났습니다. 무엇을 살까 고민하면서 의논을 하고 “생각해 보겠다”하면 이미 다음날 구입했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저처럼 생각이 많은 사람에게는 최고의 교역자와 함께 한 것입니다.
팬데믹 기간에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어렵지 않았던 것은 미루지 않고 일을 처리하는 특징 때문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아니셨으면 팬데믹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까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가끔 빠른 성격 때문에 저에게 혼도 많이 났습니다. 예를 들면 카톡에 공지를 해야할 때, 제가 볼 사이도 없이 글이 나가는 것입니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글을 한번 써서 보내면 그 다음엔 수정할 수 없으니 공문으로 나가는 것은 이제부터 검열을 받으라 하며, 나이 40넘은 목사님의 글을 검열하는 폭거(?)를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자존심 상할만도 한데, 묵묵히 따라주었습니다.
나이 차이가 가장 많이 나는 부교역자라 저에게 혼도 참 많이 났습니다. 그런데, 혼을 내도 삐지지도 않습니다. “아이 목사님...” 하며 애교부리며 넘어가는 일이 많았습니다. 미국에서 안해본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민자들의 삶의 애환을 더 잘 알고 목회하리라 생각합니다. 목사님이 훼잇빌 한인교회 이력서 넣으시고 함께 고민하며 기도했던 시간들이 많다보니 어느새 훼잇빌 한인장로교회가 저의 기도제목이 되었습니다. 나린이가 넓은 들판에서 깔깔거리며 뛰어노는 꿈을 꿉니다. 강이령 사모님의 넉넉함이 온 교인들을 위로할 꿈을 꿉니다. 이우리 목사님이 멋진 목회를 하는 꿈을 꿉니다.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