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30대, 40대의 목사님을 뵙니다. 자신감에 차 있고, 씩씩하고 얼마나 어른스럽고 성숙한지 모릅니다. 대부분 영어도 얼마나 잘하시는지, 그리고 설교하는 것을 보면 ‘정말 와우’ 감탄이 나오게 됩니다. 그분들 모습을 보면서 저의 3,40대를 생각하면 참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그런 부족한 사람이 미국에서 22년간 목회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분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40대 중반에 가나안교회에 와서 사랑받으며 지금까지 왔습니다. 공자가 40의 나이를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세상에 일에 흔들리지 않는다 해서 ‘불혹’ 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의 동요로부터 자유로운 나이라는 뜻인데, 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여러 가지로 마음이 미혹되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흔들리는 목사를 붙잡아 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11년을 오렌지 가나안장로교회와 함께 올 수 있었습니다.
40이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나이라고 한다면 50을 가리켜 ‘지천명’ 즉 하늘의 이치를 깨닫는 나이라고 합니다. 40대에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흔들렸는데, 50줄은 하늘의 뜻을 안다고 하니 절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유대인의 선생이었던 니고데모는 하늘의 뜻을 너무 몰랐기에 “너는 유대인의 선생으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책망들었습니다.
니고데모의 모습이 가끔 두렵게 다가오곤 하였습니다. 하늘의 뜻이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것도 있을 것이지만, 하나님이 저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가 더 어렵게 다가옵니다. 예전에는 쉽게 생각했던 것들이 이젠 다시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됩니다.
작년 10월에 작정하고 걸었던 그렌드캐년의 새벽길에 저의 고민은 단 한가지 였습니다. ‘주님 제가 어떻게 목회하길 원하십니까?’
눈이 날리는 날이었고, 코끝이 시릴만큼의 추위였는데도 너무 고민스럽다 보니 길이 아닌 곳으로 들어간 줄도 모르고 걸었습니다. 제 마음을 때린 것은 ‘구원’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저는 오렌지가나안장로교회 목사입니다. 제가 할 일은 우리 교회에 오신 분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사명이 저에게 ‘지천명’으로 다가왔습니다. 저의 유일한 꿈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 나라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그 복된 일을 더 단단하게 이루는 2022년도가 되길 기도하며 인사를 대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