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벤에셀 하나님
미국에서 보낸 12년 동안 매년 마지막 설교는 ‘에벤에셀 하나님’이었습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이라는 뜻은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정확한 뜻은 돕는 돌이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설교하게 된 이유는 신학대학원 다닐 때 총장이셨던 서정운 목사님께서 늘 종강예배때 하셨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바뀌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3년동안 6번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신입생은 처음들어도 졸업을 앞둔 신학생은 여러번 들었지만 늘 같은 은혜 감동이 있었습니다.
미국생활!
모두 어렵게 시작을 하지요. 그래서 그랬는지 초창기 에벤에셀 하나님은 경제적인 부분과 많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언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를 걱정하면서 한해 한해가 지나갔습니다. 그렇게 3년이 지나가자 어느샌가 미국에 정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고비고비마다 하나님은 에벤에셀의 하나님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목회를 한지 2년여가 지나면서 청년에 대한 갈증이 있었습니다. 그때 지금 지휘자인 김성봉집사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1년 후 세명의 청년을 가지고 청년부를 시작했습니다. 전단지를 만들어 Chapman Univ에 들어가 한국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뿌렸습니다.
교회 청년부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김성봉 집사가 결혼을 하면서 부터 그 작은 교회에서 청년 결혼식이 많을때는 일년에 세 번도 치루었습니다. 우스게 소리로 진정한 사랑의 교회는 우리 교회다라고 했습니다. 청년들이 계속 늘어났습니다. 그때 어느 권사님의 기도는 우리교회에 젊은이들을 보내주세요 라는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결혼을 하고 나니 아이들이 계속해서 태어났습니다. 병원심방이라고는 아이들 태어날 때 가서 기도해준 것 외에는 거의 없을 정도로 아이들이 태어났습니다. 유아부는 그렇게 태동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시끄러운 것이 아니고 교인들에게 위로였고 기쁨이었습니다. 교회 어른들에게 교회에 대한 에벤에셀은 바로 아이들이었습니다. 복닥복닥 거리면서 교회는 거의 매일 정신없이 돌아갔습니다.
2008년이 지나면서 교회 이전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교인수가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청년부 유아부가 같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이 되지 않았습니다. 교회 부흥을 위해서 나간다기 보다는 이젠 정말 비좁아서 나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감사였습니다. 교회 부흥을 위해서 라면 한국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좁아서 나가는 것이니 마음은 좀 넓은데 였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서 릴레이 금식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2010년 7월에 금식이 선포되고 얼마되지 않아서 가나안교회에서 교회를 합치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계속해서 기도회가 시작되는 중에 하나님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공간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너무 귀한 분들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두교회가 모두 감사했습니다.
어느새인가 2년이 지났습니다. 예전교회나 지금 가나안교회나 지역이 좋은 곳은 아닙니다. 모두 한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곳에 있습니다. 그래서 더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오는 분들은 정말 내교회다 하는 선택으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위치에 사람들이 오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각기 너무 맞는 분들--- 올해의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습니다. 어느 순간에도 가장 맞춤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