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세웠습니다
20대 중반에 책을 오래보면 사물이 둘로 보였습니다. 난시였던 것입니다. 그것도 심한 난시였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눈이 아프면 타이레놀을 먹었습니다. 안경을 맞추는날, 테를 어떤 것으로 할것인가를 가지고 가족들이 의논을 했습니다. 유행하는 금테로 하자. 무테로 하자, 그러다가 제 여동생이 “오빠는 단점인 얼굴을 많이 가리는 것이 좋으니까 큰안경이 좋다” 농담처럼 한 말에 가족들이 모두 동의해서 저의 첫 안경은 시커먼 뿔테로 만든 안경이 되었습니다. 멋내는 것에 관심이 없으니 가족들이 재미있어 하는 일에 동의하게 된 것입니다.
얼굴에 크림바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남자는 세수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몸에 향수 뿌리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머리에 ‘무스’나 ‘스프레이’ 하는 것도 싫어하였습니다. 머리감고 수건으로 말리고 털고 나오면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 심지어 결혼식 장에도 아무것도 바르지 않고 머리감고 털고 들어갔습니다.
어느 권사님이 저에게 “목사님 방에 혹시 거울이 없으세요? 제가 거울하나 달고 싶은데---”라고 말씀하셔서 “거울있습니다. 잘 안봐서 그렇지” 라고 말씀드렸더니, 인터넷으로 보니 목사님 머리가 너무 내려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른이 조심스럽게 하시는 말씀이라 “네 앞으로 좀 신경쓰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지난 주에 문금자 장로님을 뵐일이 있었습니다. 장로님이 헤어질 즈음에 “김목사님 제가 엄마같은 마음으로 말씀드리니 오해하지 마세요. 머리좀 위로 올리세요. 설교시간에 머리 내려오는 것 별로 보기 안좋아요” 두분이 하신 말씀이라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내 머리 이상해?” 라고 물었더니 “다른때는 몰라도 성가대에 기도하러 올때는 제발 거울좀 보고 오세요”
토요일 새벽에 드디어 머리를 약간 올렸습니다. 머리를 올리고 스프레이를 뿌렸습니다. 식사를 하는데 어느 장로님이 “오늘 교회를 들어갔는데 교회에 달라진 것이 있습디다” 달라진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데--- “장로님 뭐지요?” “목사님 헤어스타일”
어제 제 머리 스타일이 화제였습니다. 똑같은 머리에 머리만 조금 세워도 교인들이 이렇게 민감할 줄이야----
그러고 보니 40대 중반의 나이, 몸에서 땀냄새보다는 향수냄새 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나이, 머리도 감고 툴툴 털고 나오기에는 이제는 안되는 나이가 된 것 같습니다.
제 아들 예석이도 저처럼 멋내는 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선천적으로 비듬이 많이 나오는 머리라 샴푸선택에 신경을 많이 쓰지만 당사자보다 엄마가 더 신경을 씁니다. 교인들은 제머리 보고 깔끔하다는데 예석이는 별로 인 것 같습니다. “아빠! 아빠지금 모습이 옛날 뉴스진행하는 사람들 같애”
한국에 계신 아버지는 머리에 포마도(옛날 어른들이 머리에 바르던 것을 한국에서 그렇게 부르지 않았습니까)를 바르시고 외출을 하셨습니다. 늘 단정하신 모습이었지만, 저는 그 포마토 냄새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도 나이가 들어보이셨던 아버지! 그래서 머리에 기름은 나이가 들어서 바르는 것이구나 하는 선입감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드신 아버지는 더 이상 머리에 기름을 바르지 않습니다. 나가실 일도 남들에게 보여줄 필요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아들이 머리에 기름을 바를 나이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