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같은 목사! 모래같은 목사! 7월 10일! 그날은 제가 오렌지 가나안장로교회 위임식을 가진 날입니다. 사실 목사 안수받을 때는 일주일동안 금식하고 받았는데, 그때는 모든 것이 정신이 없을 때였습니다. 그때 있었던 일들을 하나 하나 되새기다가 은사 목사님이 보내주신 글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제가 위임한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고 보내신 글인데, 제 마음속에 아주 깊이 자리잡았습니다. 마치 이런 목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글 같았습니다. 그런데, 또 잊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위임식때 생각하다가 편지가 떠올라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모래(沙)는 모래 그 이상이다. 만물의 영장 인간에게 주는 큰 교훈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모래는 돌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이로되, 그 쓰임새에 있어서는 자갈과 돌멩이가 이에 못 따르고, 큰 바위가 이에 못 미친다. 모래의 쓰임새는 가히 절대적이다. 김목사님! 내 혼자 읽고 지나가기 아까워 보냅니다. 목회의 진리라 생각이 됩니다. 그러면, 모래는 무슨 연유로 그처럼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쓰임새가 큰 것인가? "쪼개졌기 때문"이다. "낮아졌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을 만큼 "내려갔기 때문"이다. ■ 한 번 모래처럼 쪼개져 보라. ■ 한 번 모래처럼 낮아져 보라. ■ 한 번 모래처럼 내려가 보라. 왜 쓰임을 받지 못하는가. 사람도 큰 사람은 "낮은 마음"을 좋아한다. 하나님은 더더욱 말할 필요가 없다. 눈이 머리꼭지에 달린 여자 어깨에 허벅지 힘을 주고 다니는 남자, 하나님도 버거워 하신다. 힘들어 하신다. 예수는 큰 바위이기도 하지만 모래다. "모래의 성품"을 지니고 이 세상을 사셨다. ■ 모래처럼 낮게 왔다가(사 53:2) ■ 모래처럼 낮게 살다가(사 53:3) ■ 모래처럼 낮은 자리에서 죽으셨다(사 53:7). 일년이 되어 갑니다. 혹이나 익숙해 졌다고 그곳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목사가 아닌 익숙해 졌기 때문에 더 잘게 부서져 교우들의 삶에 깊이 자리잡은 사람이 되길 기도드립니다. 아직도 부서져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