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 아버지의 날?”
집사님들이 하시는 우스게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하루가 어머니날이고, 364일이 아버지 날인데, 거기에 특별하게 아버지의 날이 왠말이냐 라는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한국에서 아버지 날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아버지 중심으로 모든 것이 흘러갔기 때문입니다. 지난 오렌지연합교회는 야외예배를 아버지날에 가졌습니다. 아버지의 날에 아버지가 고기굽고 생선 굽고 더욱 열심히 섬겼습니다. 여 성도들이 그것에 대해서 미안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다른 해보다 조금은 더 특별하게 ‘아버지날’이 준비되는 것 같습니다. 이유는 지난 어머니날에 남선교회에서 보여주었던 아름다운 헌신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날 잘 먹으려면 먼저 남자들이 본을 보여야 함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글을 써도 남자들은 그냥 넘어갑니다. 그것이 남자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외롭습니다. 자녀들은 자랄수록 어머니를 더 많이 찾습니다. 교우들에게 물었습니다. 언제 남편이 안되보이냐고 했더니 많은 분들이 피곤하여 들어와서 등을 돌리고 잘 때 그 등이 그렇게 외롭게 보인다고 했습니다. 어느 사인엔가 아버지에게는 모든 것이 다 외롭습니다. 나이가 들면 아내의 눈치를 본다는 사실이 더욱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오래전에 읽었던 아들의 아버지에 대한 생각 변천이 떠오릅니다. 네 살 때에는 '아버지는 전능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못하는 게 없는 슈퍼맨으로 생각합니다. 다섯 살이 되면 '아버지는 전지하다. 모르는 것이 없구나'라고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척척박사입니다. 여덟 살이 되면 '아버지도 모르는 것이 있구나'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아버지보다 선생님을 더 따르게 됩니다. 열 두 살이 되면 아버지에게서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다고 생각을 하게 되고 열 네 살이 되면 아버지는 모든 면에서 잘못 생각을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사춘기와 더불어 아이들은 아버지와 멀어집니다. 스무살이 되면 아버지는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옛날 사람이니까 그럴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때부터 아버지와의 대화는 무의미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자식을 키우는 삼십 중반이 되면 '아버지에게 한 번 물어보았으면'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자식을 낳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외로워지는 사십이 되면 아버지를 그리워합니다. 그랬습니다. 아버지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오십이 넘으면 아버지가 훌륭한 분이셨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늘 아버지를 그리워 합니다. 아버지와의 대화는 짧습니다. 아버지는 늘 똑같은 질문을 하시고 저의 늘 똑같은 대답을 합니다. 그러나 그 질문이 교회, 손주의 이야기인지라 늘 즐거워 하십니다. 아버지의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사신 날 앞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움크러진 아버지의 어깨는 어릴 때 슈퍼맨처럼 느껴졌던 어깨보다 더 위대하게 느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