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로 원서를 낸 곳은 유한킴벌리였다. 기업이념이 마음에 들어 지원을 했는데 합격통지를 받았다. 그러나 면접 때 회사 상황을 보니 내가 기도했던 4가지 기도제목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곳도 입사를 포기했다.
그러자 주변에서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용희가 아직도 세상 물정을 몰라서 저 모양이야.” “이용희는 너무 교만해.” “자기 입맛에 딱 맞는 직장이 세상에 어디 있냐? 너 철들려면 한참 멀었다.” 누구는 면전에서 이런 이야기를 대놓고 했다. 그러나 계속 기도하면서 주님께서 예비하신 직장을 기다렸다.
세 번째로 원서를 낸 곳은 외국계 은행이었다. 우연히 영자신문을 보다가 그린드래이즈 영국은행 서울지점 구인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1명을 뽑는데 140명이 지원했다. 지원자 중에는 미국 MBA 학위를 받은 사람들도 있었고 공인회계사도 있었다. 나는 영어에 능통하지 않고, 유학도 다녀오지 않았다. 공인회계사 같은 자격증도 없었다. 그런데 최종 면접까지 갔다.
영어면접을 앞두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드렸다. ‘주님, 예상 질문을 알려주세요.’ 그리고 예상 질문 몇 개와 답변을 영어로 달달 외웠다. “이용희씨는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영국인 총무부장과 지점장은 최종 면접 때 정확히 내가 외운 질문을 던졌다. 전율이 느껴졌다. 자신 있게 답했다. “오우! 엑설런트. 이용희씨는 영어를 참 잘하는 군요.” 영국인 지점장이 칭찬했다. 합격이었다.
입사 후 지점장이 종종 말을 걸었다. 그런데 나는 그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웃음으로 넘겼다. 지점장이 머리를 갸웃거리며 이런 말을 했다. “이상하다. 면접 때는 영어를 참 잘 했는데….”
영국은행은 내가 기도한 4가지 기도제목에 딱 맞는 곳이었다. 서강대 경제학과와 정치외교학과에서 배운 것은 이론이었다. 은행은 실무 그 자체였다. 당시 은행은 지금처럼 전산화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전표 기입과 부기원리는 필수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행원이라 전표를 잘못 기입해 야단맞기 일쑤였다. 모든 것을 새로 배워야했다. 은행에선 점심시간에 영국문화원에서 영어를 배울 수 있도록 배려했다. 퇴근 후에는 부기학원과 무역실무학원에 다니도록 지원해줬다. 영국은행 아시아지역 연수센터가 있는 인도에서 4주간 수출입업무 연수도 받았다.
지나고 보니 4가지 기도제목이 모두 이뤄졌다. 주일성수를 할 수 있었고, 이화여대 다락방 산돌 모임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었다. 각종 연수 등을 통해 전공과 영어실력이 향상되었고, 50만원이 넘는 월급도 받았다. “주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의 기도를 세밀하게 응답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특별히 감사했던 것은 은행에 다니면서도 여름과 겨울 두 차례 농촌전도를 다닐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동기들은 1년에 3일 정도의 여름휴가를 쓸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영국은행에서 휴가로 10일을 쓸 수 있었다. 그래서 5일씩 여름과 겨울 농촌전도를 다녀왔다.
1986년 11월 2년여 간의 그린드래이즈 영국은행 서울지점 근무를 마치고 본격적인 유학준비에 들어갔다. 군의관이었던 큰형과 작은형이 제대하면서 집안의 경제적 책임을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은행에 근무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전공과 영어 외에도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의 중요성을 배웠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약육강식의 시스템 속에서 성도들이 더욱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해야 한다는 성경말씀을 실감했다. 영국은행은 백골부대 못지않게 소중한 교훈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