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떠나갔던 아들이 돌아와 다섯식구가 살게된지 6개월이 되었습니다. 가족이 어려울 때 함께 한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아이들은 서로 스케줄을 조정하여 병원에 데려가는 일을 해주었고, 알아서 음식을 사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딸을 키운 분들의 말처럼 그런 일에 있어서는 예림이의 수고가 훨씬 더 컸습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예석이는 다른 아이들과 느낌이 좀 달랐습니다. 수술을 앞두었을 때, 저를 걱정보다는 이런 상황을 속상해하는 느낌 같은 것이었고, 병실에서도 별 말을 하지 않고 있다가 가곤 했습니다. 병실에서 제가 “예석이가 왜저래?” 했더니 집사람이 “예석이가 아빠가 살아가는 방식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왜 저렇게까지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답니다. 예석이는 제가 살아가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고 예석이는 저 때문에 옆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고생하는 엄마 때문에 힘들어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예석이와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시간을 잡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또 이야기 한다고 이해할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우리 아버지를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 것처럼 말입니다. 저의 삶은 우리 아버지의 삶과 별만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아들과 이야기를 별로 나누지 못한채 한달이 흘렀습니다.
지난 수요일 새벽에 출근하는 아들에게 “예석아 오늘 복음방송에 아빠 설교가 나오는데 꼭 들어보라”고 이야기 했더니 설교가 끝난 7시 32분쯤 “아빠, 잘 들었습니다”라늘 짧은 문자가 왔습니다. 그 설교는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 재물로 바치는 내용이었고, 그 설교의 말미에 예석이가 제 말에 순종해서 한국 군대에 갈 때 예석이의 아픔과 순종이 잠깐 언급되어져 있었습니다.
요즘 잠을 침대에서 자기 보다는 리클라이너라고 불리우는 소파에 누워 잠들때가 많은데, 수요일 늦은 밤, 리클라이너에 누워있는 저에게 아들이 슬쩍 얼굴을 내밀더니 “아빠 내 인생에 가장 잘한 선택이 있다면 그건 한국 군대 다녀온 것야. 그러니 아빠 이젠 미안해하지 마세요” 그리고는 본인도 어색한지 금방 방으로 들어갑니다.
예수님을 보낸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사람들이 모른다고 요한복음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사랑을 깨달아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면 하나님도 뭉클해하지 않으실까 싶습니다. 갱년기라 그런지 하나님 생각, 아들 생각에 금방 눈물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