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송동호 권사님은 90이 넘으셔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기억력이 완벽하셨을 뿐만 아니라 양로병원의 입원환자 대부분의 삶을 꿰뚫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가면 “저 양반은 장군 출신인 데다가, 나와 종씨”라고 말씀하시기도 하고, “저분은 너무 잘나서 예전에 너무 많은 여인이 따랐다.” “저분은 어느 교회 초창기부터 함께 하신 권사님이고, 아들이 목사님이셔”
권사님이 말씀하시면 한 번 더 보게 되는데, 그런 분들을 대하는 일하시는 분들에게는 나이 들어 병든 어른들에 불과합니다. 양로병원에서 그분들의 과거나 행적을 관심 두는 분들은 거의 없습니다. 양로병원에서 제일 대접받는 방법은 일하시는 분들의 말을 따르는 것입니다. 권사님 앞방에 거하시던 어른은 늘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대단히 유명한 분이셨다고 하는데, 거기서는 소리를 지르는 어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어른들 속으로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셨을까요?
더구나 권사님처럼 속으로는 다 아시고 기억하시는 분들은 더 힘이 드셨을지 모릅니다.
그때 해야 할 일은 자존심이 상해서 고통받느냐 아니면 내려놓느냐일 것입니다.
수술하고 나니 자존심 상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무거운 것을 들면 안 되는 것은 알겠는데, 땔나무, 청소기만 들어도, 집사람이랑 아이들이 잔소리해 댑니다. 남자가 집에서 그 정도도 못 하면 아무것도 할 것이 없습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나무가 많이 쓰러진 날, 걱정돼서 가지를 쳤는데, 바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집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해 됩니다.
운전해야 혼자라도 움직일 수 있는데, 운전을 못 하는 것은 참 견디기 어려운 일입니다. 뼈가 붙지 않는 상태로 운전하다가 사고가 나면 큰일이라는 것인데,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지만 사고가 꼭 나리라는 보장도 없는 것 아닐까 싶어 몰래 운전을 하다가 걸렸습니다. 또 말을 안 듣는다고 혼이 납니다. 일일이 부탁하기도 그래서 그런 것인데, 마치 어른 앞에 혼나는 애가 된 느낌입니다. 운전한 경력이 37년의 베테랑이고, 무거운 것을 드는 것이라면 이미 중학교 때 140파운드 역기를 들었고, 피아노를 이리저리 옮겼던 사람인데 말입니다.
당분간은 쥐죽은 듯이 자존심 내려놓고 힘을 기를 생각입니다. 나중에 한방에 갚아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어른 중에 자꾸 과거 이야기를 하시는 이유가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가 아닐까 싶어 애잔한 마음이 들어옵니다. 앞으로는 더 잘 들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