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오렌지카운티 가나안교회와 오렌지연합교회의 통합문제가 급물살을 타게 되었습니다. 노회에서 그전까지는 서로 왕래해서는 안된다 해서, 찾지 못했던 가나안교회를 2011년 12월 첫째 주 토요일에 교회에 방문해도 좋다고 해서, 30대의 집사들이 교회를 방문했었습니다. 그때 교회문을 열어주신 분이 변재무 장로님과 변청자권사님 이셨습니다. 늘 작은 교회에서 있다가 본당으로 으로 들어가는 순간 교회를 확 트이게 하는 높은 천장에, 강단은 아름다워 젊은이들이 단에 올라가 피아노도 치고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공명이 너무 잘되는 교회에서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이 노래를 했으니 모두들 감격했을 때입니다. 저희는 당연히 변장로님이 칭찬해 주실줄 알았는데, “우리교회는 잘 울려서 대충 불러도 그 정도는 나옵니다” 그러시더니 본인이 찬양하셨습니다. 목소리가 좋으셨습니다. 아마 교회를 합칠지도 모르는데 기죽고 싶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청년들이 금방 목소리가 너무 좋으시다고 혹시 성악을 전공하셨냐고 묻자 분위기는 금방 화기애애 해졌고, 누구보다 그 때 만난 청년들을 사랑해 주셨습니다. 교회를 합친 2011년도에 직접 만드신 돼지뼈에서 살만 발라 만든 감자탕을 예배 후 청년들에게 해주셨는데 청년들이 맛있다고 자꾸 해달라고 해서 2012년까지 몇 차례 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변장로님은 자신이 하신 것을 누군가 즐길 때 가장 즐거워 하셨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장로님은 시인입니다. 설교를 들으셔도 시상이 떠오르고, 주변을 봐도 모두 시가 떠오른다고 하셔서 때때마다 쓰신 시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제가 시를 써오시면 읽고 제가 느낀 감동을 말씀드렸더니 나중엔 거의 매주 쓰신 시가 책상위에 올라왔습니다.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때가 되면 당연히 시낭송을 하시는 것으로 알고 준비하셨는데, 너무 많이 준비하실 때는 돌아가신 변권사님께 말씀드려 조정을 해야했습니다. 생활 속에서 고백되어지는 시라 저에게는 늘 감동이었고, 간혹 설교시간에 사용하면 그렇게 행복해 하셨습니다. 장로님의 삶은 코로나가 확산되기 바로 직전에 돌아가신(2020)변청자 권사님을 빼놓고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장로님이 이렇게 빨리 돌아가신 이유도 변권사님이 안계시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좀더 계셨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많은 것이 아쉽습니다.
지금쯤 하나님 나라에서 수많은 시를 쓰셔서 예수님께 읽어드릴 것입니다. 천국에서 요즘 변재무 시인의 시낭송회가 열리고, 흐뭇한 미소로 변청자 권사님이 옆에 계신 분들에게 “저것 다 내게 연애편지 쓰다가 저렇게 된겁니다”라고 자랑하고 계실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