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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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지나친 배려2024-02-07 12:13
작성자 Level 10

자주 들었던 말씀 중에 한국을 떠난 그 나이에 미국에서는 나이가 멈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 대한 추억이나 기억, 그리고 심지어는 육체적인 나이까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머리로는 이해하기는 했지만, 가슴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가슴으로 이해하는 사건이 저에게 일어났습니다. 

2000년에 한국을 떠날 당시 제 나이는 34살이었습니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면 저는 어느샌가 34살의 젊은이로 변신합니다. 외모적인 변신이 아니고 심장이 저를 34살로 만드는 것입니다. 오랜만에 탄 지하철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아무리 나이 드신 어른들이 힘들게 서 있어도 젊은이들은 더 일어서지 않습니다. 한국의 문화가 바뀐 것입니다. 경로석이 따로 있지만, 워낙 많은 어른이 낮에 지하철을 타시니까 젊은이들은 어른들을 배려해 경로석이 있는데 왜 우리가 앉는 곳까지 와서 서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문화 속에서 자라지 않았고 한국을 떠난 34살로 돌아왔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 보이면 자꾸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어른이 80대라면 문제가 없는데, 젊게 보이는 70대나 60대라면 문제가 됩니다. 제가 일어나 앉으라 하면 어른이 당황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안 그래도 좋습니다” “아니 앉으세요” 집사람이 더 당황해합니다. “당신과 나이 차이도 별로 나 보이지 않는구먼” 그도 그럴 것이 그때 제 얼굴은 살이 빠져 조글조글 주름투성이였고 살이 많이 빠져 허리가 굽어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34살입니다. 

마지막으로 누나 가족을 만나러 용인으로 가는 지하철에 왜 나이 드셨지만 조금은 세련된 70대 정도 되어보시는 여자분이 저와 2M 정도에 서 계셔서 제가 일어나 부르려고 하니까 집사람이 ‘그냥 좀 가만히 있으라고…. 저분이 불편해하실 수 있다고’ 집사람 눈치에 할 수 없이 앉아있지만 내내 불편했는데, 이분이 자리가 나도 앉지 않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니 손잡이를 잡고 발 뒤꿈치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입니다. 운동 삼아 서 계신 것인데, 제 생각으로 자리에 앉으라 했다면 얼마나 불편했을까요? 

한국에 있는동안 청년들(이젠 장년들이 되었지만), 그리고 어른들도 저를 찾아오면 어른이건 젊은이건 음식 대접을 근사한 곳에서 했습니다. 찾아온 분들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지만, 그렇게 못하게 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동생집에 머물렀기에 사돈 어른을 모시고 하는 식사는 늘 제가 냈고 막내 동생은 저의 그 마음을 알아서 그런지 불편하지 않도록 제가 돈 쓰는 것을 말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집사람이 온 이후로는 늘 동생이 음식 대접을 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도 동생의 마음이라 내버려 두었습니다. 

배려도 눈치가 있어야 하겠고 지나친 배려는 상대방을 불편하게 한다고 합니다. 섬김을 받는 것도 섬기는 것이다 하는 것을 톡톡히 배운 여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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