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좋아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텔레비전에서 운동경기를 보는 것도, 직접하는 것도 포기한지 오래입니다. 그러다 보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않게 며칠 동안 LA 클리퍼스 구단주인 억만장자 도널드 스털링(80)의 이야기를 거의 매일 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가 애인과 나눈 이야기가 공개되면서부터입니다. 그가 여자친구와 나눈 대화에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고스란하게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사회의 처방은 아주 분명했습니다. NBA농구사회에서 영원한 퇴출 및 어마어마한 벌금이었습니다. 미국의 거의 모든 스포츠의 스타 플레이어는 흑인들입니다. 농구를 모든 사람들이 즐겨보는 스포츠로 만든 마이클 조던부터 해서, 행크아론, 그리고 무하마드 알리등 심지어 O.J .심슨까지 대부분이 흑인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아마 특별한 운동신경을 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집니다. 지금은 샌디에고에서 전도사로 일하지만, 스포츠 만능인 스캇이 어느날 농구시합을 끝내고 난 후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저 친구들은 우리와 달라요. 같이 점프를 해도 더 높이 날고, 저렇게 던져도 들어갈까 싶은데 들어가요. 우리와 달라도 너무 달라요”
그렇습니다. 흑인은 우리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그러나 스캇이 말한 “저들은 우리와 달라도 너무 달라요”라는 말은 따라갈 수 없는 운동신경에 대한 절망이라면 사실 우리 안에 있는 다르다는 표현은 같이 하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이 깊이 깔려 있습니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예림이가 흑인 남자친구와 결혼하겠다고 하면 내 마음은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답은 “싫다”였습니다. 인종차별의 문제가 아니고 저는 예림이가 흑인이건 백인이건 간에 그냥 내 딸이 나와 말할 수 있는 한국 사람과 결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며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예석이가 한국여자랑 결혼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그래도 딸이 흑인과 결혼하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결론은 시켜야지입니다. 이 생각이 도달하는데 전제되었던 것은 하나였습니다. 제 딸이 자란 미국과 제가 자란 한국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제 딸은 저와 가치관이 다릅니다.
저희 교회는 다양한 분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산타아나 이 외지에 사람들이 오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모두 각기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앙적인 색깔도 아주 다른 분들도 있습니다. 교파도 다양하고 지금까지 경험한 신학적 색깔도 다릅니다. 저희 교회에는 천주교 배경이 아주 짙은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만고불변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같은 예수님을 믿는데, 바라보는 시각이 다릅니다. 어떤 분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마음이 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모두 그런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분들은 선교라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내 교회 생각하시면서 교회 일을 아주 열심히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모두 예수님을 바라보면서도 생각이 다릅니다. 그리고 그런 다름을 보는 순간, 목사는 교회를 도대체 어디로 끌고 가야 하나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마음속에 분명히 있는 ‘다양함 속에 일치’를 과연 이룰 수 있을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분명히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절대 진리인 성경에 뿌리를 내리고 다른 사람의 다름을 틀렸다고 보지 않을 때입니다.
피부색 때문에 사람을 무시하는 것 이건 정말 그 피부 만드신 하나님께 불경한 죄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한 사람이 선민이라는 유태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그가 유태인이라고 죽인 히틀러와 뭐가 다르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히틀러는 특별한 사람이 아닌 다른 것을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차별이 있다면 우리도 또 다른 히틀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