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났던 분들
12년전에 교회로 전화가 한통 왔었습니다. 교회를 가려고 하는데, Ride를 해 주실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하루 종일 교회사무실에 있어도 전화 한통이 올까 말까 하는 참이었으니 얼마나 반가왔겠습니까? 당장 가겠다고 하고는 만났습니다. 마흔 살의 여인이 용감하게 초등학교 3학년, 1학년,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 세 명을 데리고 미국에 온 것입니다. 기러기 가족도 아닙니다. 무작정 와서 일 년동안 머물다가 떠났습니다. 정말 많은 추억을 만들다가 떠난 분입니다. 그때는 거의 다 그랬던 것처럼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옆집으로 이사와 가족처럼 지내다가 가셨습니다.
그리고 12년이 흘렀습니다. 초등학생이었던 준일이는 지금 USC에서 CCC 순장으로 가르치고 있고 이제 청년부 찬양인도를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오래 같이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떠난 후에도 무슨 일이 있으면 기도를 부탁하였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하다 보니 그 집안의 일이 마치 우리 교인의 일 인양 다가왔었던 것입니다. 몇 년을 못 보다가 한국에 나가면 대전에서 일부러 서울에 올라오셨습니다. 너무 바쁜 일정인지라 30분 정도밖에 시간이 안된다 말씀드려도 30분을 위해 하루를 포기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저희 교회 교인들도 참 잘하셨습니다. 정확히 일 년 있다가 가셨던 분이지만, 남편이신 최 선생이 출장이라도 오면 일부러 골프약속을 잡아 만남을 유지하셨습니다. 일주일 집에 있다가 가셨는데, 본인이 집에 계시는 것처럼 뒹굴뒹굴 하시다가 떠나셨습니다.
어제 뉴욕에 있는 김우성 형제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교회가 지진에 괜찮냐고, 그리고 교인들 안부를 물었습니다. 교회에 청년이 별로 없을 때, 농구하러, 라면 먹으러 왔다가 참 열심히 신앙 생활하다가 뉴욕으로 간 청년입니다. 그리고 뉴욕에 간지 이미 3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본인의 교회인 것처럼, 교인들인 것처럼 걱정을 합니다. 우성이의 모습이 지금 김경환 형제에게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신앙 없는 경환이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하던 우성이의 신앙을 뛰어넘는 모습을 경환형제가 보여주는 것 같아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동준 집사가 여름에 한 2,3개월 미국에 있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벌써 흥분이 됩니다. 피아노에만 앉으면 마음껏 만들어 가는 작곡, 편곡 실력에 글 솜씨까지... 거기다가 얼마나 감각이 있는지, 두 부부가 움직이면 헌집을 새집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여전히 그 집안의 모든 일들이 기도제목으로 올라옵니다. 장모님이 아프시다, 이번에 사업을 이렇게 했다 하면서 나는 목사님의 가족이다 라고 외치는 것 같습니다.
3년 가나안교회에 있으면서 식구가 된 분들이 있습니다. 3년인데 마치 30년은 같이한 분들 같습니다. 모두 모두 기도하다 보면 너무나 소중한 분들입니다. 어머니 같고, 아버지 같은 분들.... 어느새, 못 나오시면 부모님 뵙지 못한 것처럼 마음이 저려옵니다. 너무 죄송한 것은 그래도 1년 전쯤에는 그래도 자주 뵐 수 있었는데 요즘은 그럴 처지도 잘 못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도 안 믿으시면서 미국에 오시면 떡하니 예배 드리러 오는 분도 계십니다. 그런데, 살짝 웃으시는 모습에 그분은 어느새 제 교인입니다.
어느 분과의 주고받은 메일에서 이제 뵌 지 몇 개월 되지 않았는데 10년은 된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10년이 뭐냐고 한 30년은 된 것 같은데 하시는 말씀 한마디에 금방 30년이 지난 것 같은 따뜻함을 느껴서 감사합니다. 목사는 교인들 때문에 죽기도 살아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