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리가 아닙니다.
지난 어느 저녁에 교회로 갔더니 어느 구역이 찬양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본당으로 들어가자 마자 ‘동작그만’입니다. 그리고는 저에게 나가달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일날까지 보안을 유지해야 겠다는 말씀이십니다. 모습을 보니 얼마나 열심히들 연습을 하셨는지 열기가 후끈했습니다. 나이가 드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누구에게도 지지는 않겠다는 과거의 열의가 되살아나 보입니다. 안보여 주시겠다고 해서 슬며시 웃음이 났습니다. 어짜피 그 구역 반주는 저희 집사람이 하는데 집에 가면서 물어보면 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주일날 기대하면서 볼 마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어느 구역장은 찬양대회가 늘 부담이었던 분이 계셨습니다. 찬양의 은사가 없을 뿐만 아니라 구역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 자체가 구성원들을 보니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런 간증을 하시더라구요. “구역식구들이 더 난리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역찬양대회를 하면 구역식구들이 하나로 응집하는 대단한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는 모두 이기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일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구역이 한가족이 때문입니다. 내자식 못하는 것은 못보겠다는 마음과 같은, 이런 것을 통해서 구역은 가족이 되어 갑니다.
조성우 목사님이 이번 주 내내 힘드셨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구역들마다 연습을 위해서 본당을 써야 하는데 사용시간이 겹치지 않도록 안배하는데 참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구역마다 사정이 있기에 모든 사람이 모이는 시간으로 배정받기를 원하다 보니 아무래도 겹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일주일 내내 교회가 복닥 복닥거렸습니다. 처음에는 부담으로 시작하다가 속도가 나니 모두 즐거운 듯 싶습니다.
한국에서 데리고 있던 팀들을 데리고 극 동방송국에도 나가고, 한 교회의 전체 예배를 주관하여 드린 적도 있습니다. 참 이상한 것은 앞에 카메라가 돌아갈 때, 공연 바로 직전에 학생들은 더 긴장하고 더 잘한다는 사실입니다. 안 맞던 부분도 공연 들어가기 바로 직전에는 맞는다는 것입니다. 대기실에 있다 보면 안무를 위해서 형제들이 반복해서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다른 한쪽에 모여서 화음 연습하는 모습들을 봅니다. 제가 가끔 핀잔을 줍니다. “야 오기 전에 연습을 다해야지” 한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목사님 저는 평생 시험 전날 공부하는 습관이 있어서 그런지 연습도 공연 전에 할 때가 가장 잘되요” 여기 저기서 이구동성으로 “맞아요” 라고 말을 합니다.
안 맞던 부분들이 시간이 지나면 맞아 들어갑니다. 자주 반복해서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꾸 만나다 보니 마음이 맞아가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서로 의견이 다른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자꾸 연습을 하다보면 본인의 머릿속의 생각이 꼭 맞지 않구나 라는 것을 알게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내려 놓습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도 구역식구들의 형편을 보면 안되겠구나(?) 생각하고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구역식구들은 하나가 되어 갑니다.
한주일 내개 교회는 전쟁터와 같았습니다. 이제 오늘이면 모든 것이 다 끝이 납니다. 아니요 끝이 나지 않습니다. 구역식구들은 이런 모습을 통하여 더 서로 단단해 질 것입니다. 찬양으로 하나된 모습으로 서로를 돌보고 아끼는 아름다운 모습이 일어나길 기도드립니다. 수고한 모든 분들, 구역장들을 비롯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격려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