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불체자의 죽음 Musical 형식의 영화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시카고’라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얼마전 보고 온 분들은 다 울었다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이 Musical형식의 영화입니다. 꼭 보겠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을 맞추지 못해서 못보고 말았습니다. 다 아시는 내용입니다. 조카를 위해서 빵한조각 훔치면서 꼬인 인생의 이야기, 그리고 선한 신부님을 만나서 그가 삶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는 이야기, 가난의 문제, 사회적 문제등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지난 주일날 아침 일찍 Maria라는 눈에 익은 히스패닉 여인이 저를 만나기 위해서 찾아 왔습니다. 동생의 남편이 갑자기 죽었는데 장례를 치룰 돈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죽은 분은 불법체류자 였습니다. 잠시 생각하고는 들고온 박스를 예배실 뒤에 놓으라고 말씀드리고, 광고하겠노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몇몇 분과 먼저 의논을 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작은 불꽃 헌금을 그쪽으로 돌리는 것에 대한 의논이었습니다. 어느 교우가 히스패닉 교회는 형제교회이니 같은 마음으로 돕자는 말씀이 있으셔서 광고시간에 교우들에게 헌금의 용도에 대한 양해를 구하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는 저희교회 교우들을 잘 압니다. 얼마나 선한 마음을 가졌는지 말입니다. 많은 분들이 그 통에 헌금을 하셨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천불을 맞추어 드리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이미 그런 일에 사용할 수 있는 재정도 있었습니다. 어느 분이 작지 않은 헌금을 장례를 위하여 하시게 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이 되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그리고 형제교회인데, 교회를 통해서 내려와야지 매번 이런 식이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더구나 얼마나 속임이 있는 시대입니까? 급하게 정말로 돌아가셨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걸치게 되었습니다. 혹이나 우리가 잘못 처리함으로서 교회에 어려움이 될까 여러분이 염려하셨습니다. 예배 후에 들어온 헌금은 산토스 목사님을 뵙고 전달하도록 하였습니다. 목사님께도 “혹시나 우리가 도와야 할 일이 있다면 목사님을 통해서 들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그런데, 사실 마리아 입장에서 그것을 담임목사님에게 말씀드리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저러 생각이 많았던 그날입니다. 밤에 한 교우에게서 메일이 왔습니다. 불체자와 영주권자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글이었습니다. 그 글이 마음속에 많이 남았습니다. 사실 우리가 다 경험한 것이지만 그린카드 받고 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게 하는지 말입니다. 앞에 언급한 레 미제라블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원뜻은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불쌍한 사람을 돕는데, 지혜가 필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무작정 노신부처럼 할 수도 없고, 자베르 경감처럼 무조건 법의 잣대로 대할 수도 없습니다. 한 불체자가 죽었습니다. 미국사회에서 보면 한 불체자인데, 그 가족에게는 가장이고 남편입니다. 사회에서는 한마디로 주민등록 번호 없는 사람이 죽었는데, 그 가정에서는 기둥이 죽었습니다. 목사라는 직책이 산타아나에 있는 오렌지가나안장로교회가 왠지 무겁게 다가옵니다. 한사람이 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