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커져서 편한 것이 많아졌습니다. 예석이가 운전을 하자 아침에 더 이상 예준이 Ride를 걱정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부탁만 하면 알아서 도와줍니다. 제키만큼 큰 예림이도 설거지를 비롯한 일들로 엄마를 도와줍니다. 물론 막내 예준이는 여전히 막내답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크는 것이 마냥 편한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일을 알아서 하기 시작하면서 어느샌가 아이들의 눈치를 보게 되었습니다. 얼마전에 예석이에게 예준이 Ride를 갑자기 부탁하게 되었는데, 이미 약속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점잖은 목소리로 “아빠 먼저 말씀해 주어야지요” 물론 예석이 성격에 시간을 조정해서라도 아이를 픽업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는 예석이 눈치를 보게 되었습니다. 예석이에게 하는 말은 명령에서 부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예림이 눈치보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워낙 집에오면 말이 없는데다가 자기 주관이(?) 뚜렷한 아이라 Yes와 No가 분명합니다. 그녀석과 이야기 하려면 숨을 골라야 합니다.
아이들이 커지면서 자기 생각이 많아지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 아이들의 생각이 옳다는 생각이 종종 들곤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예준이 눈치를 보는 일이 생겼습니다. 예준이에게는 ‘이건 내것’이라는 소유의식이 대단히 강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내가 임의대로 하면 꼭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물어봐야지” 라고 말입니다. 가끔 무엇을 주면, 이것 형과 Share하는 것이냐 예준이 것이냐고 묻습니다. 얼마전에 예준이 컴퓨터라고 지칭한 것을 임의대로 켰다가 한참 혼이 났습니다. 다시 껐다가 허락받고 켜는 웃지못할 일이 생겼습니다(그건 제 전용컴퓨터입니다)
아내의 눈치를 살피는 것은 이미 선수가 되었습니다. 목소리, 행동에 머리로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반응을 합니다. 누워있다가도 앉아있다가도 아내의 목소리가 아이들을 향한 말인데도 불구하고 스프링처럼 일어나게 만듭니다. 아내의 목소리에는 아이들을 방으로 집어넣는 특별한 권위가 있습니다. 그리고 20대에 연애할때는 “나만 믿어라”라고 이야기 했는데, 요즘은 “난 당신없으면 못살아”가 되었습니다. 평화를 위해서 죽어지내는 것이 좋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물론 아내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나이를 먹으면서 느는 것은 눈치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 회개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 눈치보는 것은 참 잘했는데 하나님 눈치보는 것을 잘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일 만만한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가끔 제 눈치보도록 협박도 종종 했습니다. 하나님 눈치안보고 내 마음대로 할 때가 참 많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러저러한 고민이 많아지는 2012년 가을의 문턱에 참 하나님 눈치안보고 목회했구나 하는 어이없는 탄식이 흘러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