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초등학교를 위한 Yard Sale
올해로 6번째 마틴초등학교를 위한 바자회가 이번 토요일에 열립니다. 처음에 과연 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와 또한 우리 교회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속에서 시작한 바자회의 그런 설렘은 이제 사라졌습니다. 교인들이 워낙 열심이시고, 협조를 잘해주시는 행사인지라 더 이상 우려와 근심은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 행사는 참 보람있는 행사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건을 갖다 놓으시는 분들이나, 행사에 참여하는 분들은 어쩌면 무사히 일을 마쳤구나 로 끝나는 일입니다. 사실 시간이 지나면 마티초등학교 학생들도 기억하지 못할 일들입니다. 작은 일일 수 있습니다. 바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데, 퍼뜩 떠오르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태복음 25장에 나와 있는 “내가 목마를 때에, 배고플 때에, 내가 헐벗었을 때에 너희가 도와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기억할 수 없는 일이기에 “우리가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 묻지요. 이 작은 일이 무슨 그런 큰일이겠습니까? 우리 집에 쓰다가 안쓰는 것 갖다가 판일이 무슨 큰 일이겠습니까?? 지짐하고 김치 만들고, Car wash 하는 것이 무슨 큰일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기억할 것도 자랑할 것도 못됩니다.
어릴때 저희 집에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근무하시던 장로님이 주셨던 크리스마스 카드가 참 많았습니다. 그 카드는 미국 분들이 세브란스 병원에 보내준 구제품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생각나는 그 카드는 안을 네번 접었던 형식이었습니다. 그 카드에 그려져 있는 그림들은 별천지 같았습니다. 아름다운 교회, 아름다운 눈길, 눈사람, 썰매....
어쩌다가 나이드신 어른들이 삶을 정리하시기 위하여 하시는 Garage Sale에서 오래 묶어두었던 카드에 그렇게 네번 접는 카드를 보게 되면, 왠지, 장농 위 과자 상자안에 들어가 있던 카드를 하나씩 보면서 크리스마스의 꿈을 꾸었던 어린시절로 돌아가곤 합니다. 그 카드를 한국으로 보낸 분들이 기억이나 하시는 일일까요?
아버지가 섬기시던 교회 마당에 방공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방공호 위에 종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끔 방공호 앞에서 배급을 나누어 주곤 하였습니다. 거기에서 처음으로 아주 조그마한 유리병에 아기 얼굴이 그려진 것을 받아 보았습니다. 그것이 아기들이 젖을 떼고 먹는 것인줄 훗날 알았습니다. 별것 다 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을 보내기 위해서 애쓴 분들은 이젠 다 늙으셔서 돌아가셨을 것입니다. 아니면 그분들은 양로원에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교회 어른들! 이제 나이가 드신 어른들, 본인들이 과거에 어떤 일들로 교회를 이끄셨는지 오랜 추억처럼 가물가물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꼭 기억할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아니 그렇게 기억에 남을 만한 일들도 아닐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꼭 기억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하나님 이십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하나님이 Yard Sale 한것도 기억하신다구요? 하나님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가 행한 작은 일들도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작은 일이라 하는데 하나님은 큰 일이라 하십니다. 그리고 그 일은 우리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마틴초등학교의 어떤 아이에게는 꿈을 심는 시간입니다. 마치 제가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면서 꿈을 꾸었던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