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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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생명길 중창단의 미국방문을 기대하며2024-02-07 09:30
작성자 Level 10

생명길 중창단의 미국 방문을 기대하며


1997년 처음으로 성악과 학생들을 데리고, 중국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대략 30여명이 움직이는 큰 덩치인지라, 비밀스러운 선교가 아닌 중국 공산당 종교국의 허락을 받고 하는 선교라기 보다는 문화교류 였습니다. 자존심이 쎈 중국의 문화는 다른 나라사람들이 와서 일방적으로 공연하는 것을 차단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두곡을 부르면 저쪽에서도 두곡을 부르는 문화교류 차원입니다. 준비하는 과정가운데, 우리가 부르는 찬양가사및 모든 것을 다 중국에 알려주어야 했고, 하나라도 틀리면 문제가 되었던 시기입니다.


그때 우리를 인도하였던 것이 바로 홍콩한인선교교회 윤형중 목사님 이셨습니다. 윤목사님은 비젼의 사람이었습니다. 홍콩에는 100명 넘는 교회가 3-4개밖에 없습니다. 작은 교회를 담임하셨던 윤목사님은 중국선교에 비젼을 품고 팀들을 초청하여 중국선교의 길을 개척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사실 모든것이 자비량으로 하는 것이지만, 100여명 남짓되는 홍콩선교교회가 감당해야 하는 일도 참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이라 그랬는지 36시간을 버스를 타고 다녔던 기억도 홍콩의 한복판에서 찬양을 했던 기억도 다 새롭습니다. 중국교회는 한국의 젊은 성악과 학생들이 부르는 찬양에 놀라기도 하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5천여명이 넘게 모이는 중국교회의 성가대에는 4부로 부르는 수준이 안되었을 때였습니다. 처음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던 분들이 일년,이년 반복되어지자, 중국교회는 정식으로 요청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에게 찬양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중국을 다녔던 젊은이들 중에 중국선교사가 네 명이나 나왔습니다. 그중에는 정말 성악도로서 촉망받던 혜림이가 있습니다. 남편인 박재찬 선교사를 따라서 모든 것을 버리고 중국으로 떠난 자매,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답니다. 그리고 이화여대를 다닐 때도 남자들의 선망이 되었던 선영이! 아나운서가 되는 꿈을 포기하고 남편을 따라서 중국으로 들어갔습니다. 남편이 예전에는 조각남이라고 불리웠던 친구입니다. 길거리를 다니면 늘 영화사에서 붙던 젊은이가 지금은 중국선교 베테랑이 되었습니다.

생명길 선교회 내에, 성악을 전공한 사람들이 모여서 생명길 중찬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월급이 나가는 팀입니다. 사실 월급이라야 교회 솔리스트 수준이지만 그래도 참 기득합니다.

이번에 중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과 한국에서 움직이는 생명길 중창단이 함께 모여 미국 공연을 갖습니다. 그리고 첫 교회가 바로 오렌지 가나안교회입니다. 금요일이 은혜한인교회.....

어떻게들 변해 있을까?


20년 전 같이 중국을 다녔던 사람들을 미국에서 만나기 시작합니다. 몽골대학 영양사로 일하는 김선미 선교사를 두 달전에, BEE대표인 조문상 선교사를 일주일 전에, 그리고 이젠 윤형중 목사님을 비롯한 같이 비젼을 나누었던 친구들을 15년 만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만나면 예전 이야기 할래기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날을 기대합니다. 도착한 그 다음날 하는 공연이라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예전 20대의 활발함은 없을 지라도, 좀 더 농익은 목소리로, 선교사의 영성으로 교회에 은혜를 주는 그 시간을 기대해 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위축되어져 가는 것 같아도 보면 계속해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참 감사하고 즐거운 일입니다. 10월 1일날 수요일 기도하면서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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