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와서 생소했던 것이 바로 아버지의 날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날에 어머니께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엄마는 참 위대하고 놀라운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날? 이날은 도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한국 아버지들에게 있어서 아버지의 날은 참 쑥스러운 날이기도 합니다. 상담을 할때 바로 육신의 아버지로부터 상처를 많이 받은 분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폭력적이고 권위적이고, 혹은 술에 쩔어서 사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란 분들에게 좋은 추억을 기대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어떤 분들은 아버지가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남으로 일어났던 큰 아픔을 마음에 지닌 사람들도 있습니다.
토요일에 아버지를 묵상하면서 기도하는데, 제 모습속에서도 아버지에 대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아버지가 도시락을 놓고 간 저를 위해 학교로 찾아오신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생일때 이미 60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당시 친구들이 할아버지 오셨다고 이야기 했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때 너무 부끄러워 아버지를 정말로 할아버지라 이야기 하고 싶었는데, 우리 아버지라고 이야기 하고는 화장실에 가서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창피해서 울었고, 마음속으로라도 아버지가 아니고 할아버지라고 부인하고 싶었던 마음이 미안해서 울었습니다. 제 마음도 모르는 아버지, 도시락 전해 주시고 돌아선 아버지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초등학교 5학년의 마음은 그렇게 멍들었습니다. 이상하게 그 뒷모습은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아마 제 마음의 미안함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지와의 좋은 추억이 별로 없습니다. 다른 아버지와 다를 것 없이 우리 아버지도 대단히 권위적이셨습니다. 아버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기억도 별로 없었고, 아버지와 목욕탕을 같이 가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해서 원망도 참 많이 했습니다.
아버지가 되니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내 자식들이 아내를 저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아내는 정말로 아이들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들어주고 챙기고 헌신합니다. 그러나 나도 아내 못지않게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그래도 아버지로서 몇점짜리냐 하면 말할 것도 없이 빵점짜리입니다. 그래서 결심하는 것이 있습니다. 훗날 더 나이가 들면 아이들이 아버지의 날이라고 선물도 챙겨줄것입니다. 용돈도 줄지 모르겠습니다. 그날 그것 받는 것이 낯간지럽지 않고 당당하도록 정말 좋은 아버지로 살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훗날 저를 생각할 때 좋은 추억이 많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