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장례식에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바로 ‘Why?'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정말 하나님의 생각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만약에 반목사님 서계신 자리에 나의 아버지가 서 계시고, 내가 잠들어 있다면 우리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실까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가기 전에 조목사가 저에게 신신당부 합니다. “목사님 가셔서 우시면 정말 안되는 것 아시죠?” 저도 자신이 없어서, 맨뒤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제 옆에 어느 젊은 부부인데, 아내되는 분이 계속 웁니다. 그리고 조목사님이 앉아 있는데 찬송을 부르는데 조목사가 정말 꺼이 꺼이 웁니다. 참고 참았던 눈물이 자꾸 나옵니다.
요한 형제의 노래가 나옵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팝송도 나오고 가스펠도 나왔습니다. 그중에 한곡이 ‘My tribute'입니다. “어찌하여야 그크신 은혜 갚으리 무슨 말로서 내 사랑 다 고백하리까 하늘의 천군천사라도 나의 마음을 모르리 나 이제 새소망이
있음은 주님의 은혜라 하나님께 영광 하나님께 영광 날사랑하신주 그 피로 날 구하사 죄에서 건지셨네 하나님께 영광 날 사랑하신주”
짧은 인생을 살면서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치열하게 하나님 사랑하고 가족들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모습이 영상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아마 지금쯤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님 품속에서 ‘My tribute'를 부르고 있지 않을까요? 천국예배당 성가대에 올라갔을 것입니다. 새로운 형제 왔다고 아마 오늘 특송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제와 같은 눈물이 아닌, 먼저 간 성도들이 요한 형제의 특별한 찬송에 환호를 지르며 즐거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너무 사랑하셔서 미리 데려간 형제, 우리는 지금도 몰라서 ’Why?'라고 하지만 요한 형제는 이미 다 알기에 예수님에게 그렇게 여쭙지 않을 것입니다.
잠시 사는데 먼저 가고 늦게 가는 것, 영원이라는 시간속에서 보면 차이를 느끼지 못합니다. 정말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인데 그래도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자꾸 ‘왜’라고 묻게 됩니다. 남아있기 때문에 또 묻게 됩니다. 누군가 저에게 “예수님이 왜 그러셨지요?” 라고 묻는다면 드릴 말씀이 특별히 없습니다. 다만 답을 찾기 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입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반목사님 사모님을 꼭 안아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잊어지도록 사랑을 드리며 살고 싶습니다. 그날 마치 요한형제가 저에게 ‘엄마를 부탁해’
하는 것 같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