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에 사랑하는 친구가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의사였습니다. 그의 아내도 의사였습니다. 그는 8년전만해도 전혀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야망이 있었던 친구였습니다. 연대 의대를 나와 모교에 교수가 되겠다는 일념하에 군대대신 연대에서 세운 몽고친선병원에 소아과 의사를 자원하여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의사이면서 선교사인 선배를 만나 98년도에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늦게 신앙생활을 시작한 그는 예수님에게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도 덩달아 미쳤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더 잘알기 위해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신앙생활을 잘 할수 있지만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이 그 친구의 변심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공부를 더 하겠다고 하니까 더 물어보지도 않으시고 미국 유학을 승낙하셨습니다. 부모님은 미국에서 공부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모르셨던 것입니다.
같이 인터뷰하고 같은 날 비자받고 미국에 와서 한 동네에 살면서 교제도 나누고 몽고를 위한 선교모임도 같이 하면서 삶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어느날 목사가 되겠노라고 말했습니다. 말리고 싶었습니다. 목사보다는 평신도 선교사로 몽고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선교적인 전략으로 그것이 낫다라는 생각보다는 목사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고달픈 가를 알기때문에 말리고 싶었습니다.
지난 주에 목사안수식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아직도 믿지 않으시는 그의 부모님들이 목사가 뭔지도 모르시면서 깊은 한숨을 쉬며 그 자리에 앉아 계셨습니다. 친구에게 손을 얹고 안수하는데, 알수 없는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습니다.
좋은 길, 남들이 원하는 길로 가지않고 고난의 길을 가는 그 친구에게 도저히 잘 결정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알수없는 공허와 서러움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목회하면서 받았던 상처가 있었기에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그 친구는 십자가의 길을 담담히 가려는데, 저는 축하한다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목회자들이 많이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비난 받을 행동도 합니다. 초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을 포기하고 걸어가는 그 외로운 길에 따뜻한 한마디로 목회를 격려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최원규 선교사의 목사안수를 축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