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에 아버지가 넘어지시면서 고관절이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어른들이 넘어지시면 고관절 손상으로 돌아가신 다는 그 부위였습니다. 의사의 소견은 수술하지 않으면 한달, 수술하시면 3달을 사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동생들이 돌보는 입장이라 저는 수술에 대한 의견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 하셔서 결국 수술을 결정했는데, 다행한 것은 지금까지 도리어 건강하게 살아 계신다는 것과 불행한 것은 전신마취로 인한 치매와 치매로 인해 재활을 하지 못하셔서 끝내 다시는 걷지 못하신다라는 것입니다.
몇주전에는 3일간 먹지도 않으시고 잠만 주무셔서 돌아가실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교회의 허락을 얻어 한국에 다녀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족을 두고 홀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모시는 것은 제 여동생과 남동생입니다. 둘다 워낙 효자인지라 가서 제가 할 것이 없다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고 있는 동안 같이 시간을 보내려고 애를 썼습니다. 첫날 아버지는 저를 기억하시지만 이름을 부르지 못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아들인 것만을 기억하셔서 “아버지 제가 누구에요?” 라고 물으면 “아버지 아들이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어디 살아요?” 라고 물으면 “비행장 근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미국에서 오신 것도 아시는데, 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5일째 되는 날 아버지가 저보고 “인철아”하셨습니다. 동생들도 보기에 그렇고 해서 내색하지 않았지만 참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모교회에서 설교하는 날은 잘하라고 축복도 해주셨지만 금방 다시 치매 상태로 돌아가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아버지의 찬양하는 솜씨와 기억력입니다. 90이 넘으셔서 영어찬양을 배우셨다고 합니다. 누우셔서 찬양을 하는데 영어로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이렇게 영어를 잘했나 동생에게 물었더니 치매에 걸리시기 전에 영어 찬양하는 곳에서 찬양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그 찬양을, 또한 한국말로 찬양을 누우셔서 2-3시간을 그냥 부릅니다. 그러다가 후렴구가 되면 눈물을 흘리시며 부르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너무 감동적인 장면인데, 매일 그것을 경험하는 가족들에게는 시끄러운 소음일 뿐입니다. 다행한 것은 아버지는 여전히 발음도 음정도 거의 틀리지를 않으십니다. 죄인이라는 대목만 나오면 우시는 아버지를 뵈면서 아버지는 하나님 나라 가실 준비가 다 되어 있다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매일 새벽예배를 어머니와 드렸습니다. 어머니 옆에 앉아 새벽예배를 드리는 즐거움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집앞에 있는 장안교회에 대략 30여명의 성도들이 새벽예배를 드리는데, 엄마옆에 아들이 같이 새벽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게 행복해 하시는 엄마의 모습을 봅니다. 83세 이신데, 아들이 옆에 있어서 그런지 큰소리로 찬양을 하시고, 말씀을 또릿또릿하게 읽으시는 어머니를 뵙니다. 이북에서 내려오셔서 자존심 강했던 어머니의 모습은 없어지고 약한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엄마의 손에 이끌려 가서 양복도 맞춰 입었습니다. 검진하는 돈도 엄마가 내셨습니다. 한국나이로 50인데, 엄마는 저를 끌고 다니시면서 이것 저것 사주시는 것이 즐거우신가 봅니다. 제가 하두 거절하니까 남동생이 그럽니다.“형 제발 엄마 하는대로 좀 내버려 둬. 즐거워 하시는 것 안보여?”
한국이 그리운 이유는 거기에 사랑하는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