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도에 하루종일 있어도 교회에는 전화도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느 젊은 여인이 아이 셋을 데리고 예배를 드리러 온 것입니다. 박미정 집사님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우연치 않게 오렌지시에 머물면서, 그 작은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에서 갑자기 쫓겨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급하게 아이들을 전학시키면서 우리 아이들이 다니던 곳으로 전학을 시키고 그 일을 계기로 제가 살던 아파트로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바로 옆집으로 말입니다. 바로 옆집이다 보니 숨길 것이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일년동안 정말 가족처럼 지냈습니다.
일년이 참 빨리 갔습니다. 그때 아이들이 서로 나이가 비슷해서 같이 무지하게 놀러 다녔습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일년 후 아이들, 8명을 데리고 방학중에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비록 2달간 이었지만 갑자기 교회에 아이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유년주일학교의 중흥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기존에 있던 아이들에, 그 조그마한 교회가 시끌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렀습니다. 2008년도 큰아이 준일이가 중3이 되었을때 미국으로 보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준일이가 3년동안 우리집에 같이 있었습니다. 집사님은 관계를 참 소중하게 여기는 분이었습니다. 한번 관계를 맺으면 아주 오래 갑니다. 그때 미국에서 사귀었던 대만 아줌마와는 지금도 서로 오가며 지내고 있는 것을 보면 아주 특별한 분입니다.
준일이는 별로 신경 쓸 일이 없는 아이였습니다. 자기가 다 알아서 했습니다. 3년을 별탈없이 있더니 USC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들어갔습니다. 공부는 준일이가 다 했는데, 준일이의 부모님은 “목사님 덕분입니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LA로 올라갈때 말을 했습니다. “2년간은 우리 교회를 나와라 그 이후로는 네가 교회를 정해라” 준일이가 그 먼데서 열심히 청년부를 지켰습니다. CCC를 하면서 순장으로 헌신하면서 신앙도 아름답게 자랐습니다.
준일이 아버지이신 최홍택 선생님은 오셔도 거의 말씀을 안하시다가 가시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인들 중에 일부러 골프약속을 잡아 치시는 수고를 해주신 분들 때문에 저희 교회를 오는 것이 어색하지 않으셨습니다. 최 선생님은 한국에서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 연구소에서 일하십니다. 그 영향을 받아 준일이는 NASA에서 인턴쉽을 했습니다. 어느날 “오늘은 제가 밥을 사겠습니다” 라고 말을 하더라구요. 자기가 돈을 받았다고 말입니다. 기득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그렇게 초등하교 2학년때 처음 보았던 아이는 어른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여자 친구가 생기면 데리고 와서 인사시키고, 신년이 되면 인사하러 오고....
지난 금요일에 졸업을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대를 이으려는지, 조지아 텍대학원 항공공학과에 아주 좋은 조건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이 졸업을 한다고 그 전날 두 분이 오셨습니다. 일년만의 만남입니다. 만나면 그냥 어제 미국을 떠났다가 온 분처럼 거리낌이 없습니다. 기족인 것입니다. 안보면 보고 싶고, 만나면 다시 시시해 지는 관계...
한번도 보지 못한 박미정 집사님 주변의 사람들 이야기를 거의 다 꾀차고 있습니다. 미주알 고주알 기도제목이라고 때때마다 이야기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같이 예배 드리면 또 언제 이쪽으로 오실지 모르겠습니다. 아들이 아주 멀리 가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사람이 의리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미국에 왔는데 여기를 안 들린다? 그날은 십리로 못가서 발병이 나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