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장례식 예배를 드리고 오늘은 어머니 주일 설교를 해야 합니다.
두 가지를 다 하려다 보니 마음이 참 어려웠습니다. 누군가 목사는 ‘광대’라고 했습니다. 광대는 분장을 했기 때문에 그 분장뒤에 나타나는 실제 감정을 알 수 없습니다. 젊은 엄마 장례식 다음날 어머니 주일...
엄마 앞에선 늘 광대였습니다. 엄마 품이 제일 따뜻한데, 엄마가 힘들어 하실까봐 엄마 앞에서는 늘 괜찮다 했습니다. 지금도 엄마에게는 다 좋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엄마는 더 했던 것 같습니다. 엄마도 늘 “괜찮다” 그랬습니다. 그런 엄마의 뒷 얼굴엔 하나님만이 아시는 엄마의 진짜 얼굴이 있었습니다. 하두 내색을 잘 안하시다 보니 엄마도 진짜 본인의 마음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문득 본회퍼의 슬픔이 다가옵니다. 목사도 엄마들도 한참 가면을 쓰다보니 ‘나는 누구인가? 묻게 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감방에서 나오는 나의 모습이
어찌나 침착하고 명랑하고 확고한지 마치 성에서 나오는 영주 같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간수들과 대화하는 내 모습이
어찌나 자유롭고 사근사근하고 밝은지 마치 내가 명령하는 것 같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불행한 나날을 견디는 내 모습이
어찌나 한결같고 벙글거리고 당당한지 늘 승리하는 사람 같다는데
남들이 말하는 내가 참 나인가?
나 스스로 아는 내가 참 나인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고 그립고 병약한 나
목 졸린 사람처럼 숨 쉬려고 버둥거리는 나
빛깔과 꽃, 새소리에 주리고 따스한 말과 인정에 목말라하는 나
방자함과 사소한 모욕에도 치를 떠는 나
좋은 일을 학수고대하며 서성거리는 나
멀리 있는 벗의 신변을 무력하게 걱정하는 나
기도에도, 생각에도, 일에도 지쳐 멍한 나
풀이 죽어 작별을 준비하는 나인데
나는 누구인가?
이것이 나인가? 저것이 나인가?
오늘은 이 사람이고 내일은 저 사람인가? 둘 다인가?
사람들 앞에서는 허세를 부리고,
자신 앞에서는 천박하게 우는소리 잘하는 겁쟁이인가?
내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이미 거둔 승리 앞에서 꽁무니를 빼는 패잔병 같은가?
나는 누구인가?
으스스한 물음이 나를 조롱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당신은 아시오니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오, 하나님!
(디트리히 본회퍼·1906-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