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러짐
순수 한글중에 ‘어우러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둘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 같이 한덩어리가 되어 노는 것을 말합니다. 이 어우러짐이라는 단어는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해 줄때 시작됩니다.
어느 장로님이 글을 하나 주시면서 “제 장례식 예배에 사용해 주십시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자마자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아니 그럼 이것을 저보고 20년 보관하라는 말씀 이십니까? 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덕담이지요. 그런데, 그글이 참 좋은 글이었습니다. 그 글은 돌과 물의 어우러짐을 나타내는 고사성어였습니다.
물리적으로 돌과 물은 같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물만 있는 계곡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서로 맞지 않는 물과 돌이 어우러져 한국의 그 아름다운 계곡을 만들어 놓습니다. ‘어우러짐’입니다.
저에게 주변 들의 기도제목을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보통은 가족을 위해서 기도부탁 하는데, 아들의 친구가 있는데, 아프다, 사위의 누구인데 아프다 하시면서 너무 가슴이 아파하십니다. 그러면 그 기도는 어느새 제 기도가 됩니다. 이유는 그분이 그렇게 아파하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성도의 모습속에서 어우러짐을 봅니다. 그런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마틴 초등학교와 저희는 사실 별로 관계가 없습니다. 주변의 가난한 이웃들도 별로 관계가 없습니다. 그들을 우리가 돕는다고 우리가 더 위에 있거나 상하적인 관계가 될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어쩌면 남의 동네에 와있는 한국인들을 받아주는 것이고, 우리는 그들과 어울려 사는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어울려 사는데, 적극적으로 그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보겠노라고 우리는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보는 시선이 많이 따뜻해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좀더 노력하면 우리의 어우러짐은 더 깊어질 것입니다.
저는 성경번역에 조금 부정적인 편입니다. 강명관 선교사가 굳이 만든 성경이 다음세대까지 갈 것이라고 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10년 이내에 바나와 족에게 더 많은 문명이 들어가고, 그들의 언어가 아닌 포르투칼 언어를 쓰는 아이들이 훨씬 더 많아질 것입니다. 더구나 그들은 불과 100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한 그들에게 그들이 살 수 있는 언어를 알려주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늘 가졌던 질문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왜 저리로 보냈습니까?” 기도하면 마음이 아프고 늘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성경번역 선교사는 성경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을 언어를 배우고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들의 말을 배우고 그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그들의 문화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산 10여년의 세월동안에 바나와 종족은 모두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마을 전체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강명관 선교사는 그곳에 언어를 만들고, 성경을 번역하러 갔지만, 사실 그런 모든 것도 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같이 살아갈 때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바나와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참 아름다운 어우러짐을 만들었습니다.
한국분들은 어우러짐에 익숙하기도 하지만, 끼리끼리에 더 익숙한 편입니다. 작고하신 이규태 선생님이 쓴 글 중에 한국인의 끼리끼리는 장사하는 분들은 어떤 곳을 파고들어갈 때 자신의 고향사람, 사둔의 팔촌까지의 인연을 파악해서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오랜 민족성은 학연, 지연, 지역감정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을 만드실 때 마음에 방 열개를 주시면서, 방 세개는 네가 원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나머지 7방은 누구나 와서 살도록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어우러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