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14년
며칠 전 8. 15일 광복절이 지나갔습니다. 일제 침략 36년 만에 얻는 독립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저희 가정에는 미국에 온지 14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2000년 8월에 저는 정신없었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했던 시기입니다. 인도하던 서울대 찬양선교단의 8월 중국선교사역을 마무리 하고 싶었고,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표는 8월 15일 끊었습니다. 더군다나 선교팀이 출발하는 날, 처남이 결혼식을 했기 때문에 결혼식을 참석하고, 홀로 중국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서 팀과 합류하는 조금은 어이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팀을 이끌 지도자를 이미 3개월 전에 섭외하였고, 인수인계를 진행하는 중이었지만, 마지막 사역인지라, 그것만큼은 제 손으로 마무리하고 싶었습니다.(성악하는 학생들을 데리고 중국을 다니기 시작한지 4년하고 8번째 문화 사역이었습니다). 정말 좋았습니다. 생명처럼 사랑했던 젊은이들과 보냈던 13일 이었습니다. 그리고 8월 14일에 한국으로 돌아와, 부모님께, 처가에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동안 미국 가는 짐은 다섯 살, 세살 아이를 둔 아내가 정리해야 했습니다. 14일 오후에 중국에서 돌아와 15일 아침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들아왔으니 얼마나 준비가 어설펐겠습니까?
환전도 당일 날 하려고 하니, 광복절이라고 은행은 다 문을 닫았고, 가장 비싸게 공항에서 환전했습니다. 성악 하는 친구들이 공항에서 불러준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라는 아름다운 선율을 들으면서 비행기를 탔던 날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서야 정신이 들었습니다. 아내와 두 아이는 피곤한지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얼마를 들고 미국에 오는 지도 확인을 못했었습니다. 조용히 화장실에 들어가 가지고 있는 돈을 세보고 또 세보았더니 1만 2천불 정도를 들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계산을 해도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한 학기 등록금 내고, 아파트 구하면 6개월도 버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새벽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가족을 책임져 주세요” 말도 안되는 계약같았지만, 베델에서 야곱이 하나님을 향해 서원했던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렇게 어설프게 준비하고 시작했던 미국생활이 어느새 14년이 흘렀습니다. 예석이가 이제 기숙사에서 나가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책상이 필요하다고 해서 중고를 하나 구입했습니다. 성가대 세미나를 마치고 밤에 가서 보기로 했는데, 집사람이 주소를 알려주는데 깜짝 놀랬습니다. 바로 우리가 처음 미국생활을 시작했던 아파트였습니다. (그 아파트에서 예준이를 낳았고, 미국에 정착하는 오렌지연합교회 젊은이들은 대부분 그 아파트를 거쳐갔습니다)
젊은 부부가 아이 둘을 낳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고 합니다. 바로 14년전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책을 보니 중국어 책이 쌓여있고, 성경책이 몇 권 눈에 들어옵니다. 물어보았더니 중국에서 고등학교, 대학교를 나오고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고 합니다. 딱 보니 신학생 같았습니다. 중국으로 유학을 가서 공부하다가 예수님 만나고, 삶의 목적을 바꾼 분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비슷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상을 들고 나오는데, 바로 건너편 우리가 처음 살았던 호실이 눈에 들어옵니다. 방 하나짜리 아파트이지만 궁궐처럼 느껴졌던 곳입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감사하고 행복해 했던 곳입니다.
너무 우연처럼 미국 온지 14년이 되는 그 다음날 책상을 가지러 간곳이 우리가 처음 미국생활을 했던 아파트, 아! 하나님이 인도하셨구나 라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공항에서 학생들이 ‘승천’을 불러주어도 됐는데 굳이 불러준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너의 우편에 그늘 되시니’라는 찬양에 감사하고 감격하게 되는 밤입니다. 돌아보면 사람들은 예정론를 믿게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예배하심과 손길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민생활을 돌아보십시오. 힘들었어도 그 순간에 같이 하셨던 주님의 돌보심을 생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