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되는 이야기
변희관 목사님이 한국가시기 전에 꼭 뵙고 싶어했던 분이 계셨습니다. 은사이신 서정운 총장님이셨습니다. 사석에서는 형이라고 불렀던 관계라고 합니다. 헤어지는데, 서정운 총장님이 변희관 목사님 앞에서 “김목사는 마틴루터야”라고 소개합니다. 5년 전 말씀사경회 마치던 날에 온 교인들 앞에서 아끼셨던 마틴루터 상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사모님이 의아해 하실정도로 아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티루터상은 제 책장에 있습니다. 마틴루터처럼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마는 그렇지 못하기에 그 말씀이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존 후스는 종교개혁 전의 분입니다. ‘십자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면죄를 약속했을 때, 후스는 이 ‘십자군의 면죄’를 비난했습니다.
교황은 물리적 힘을 사용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으며, 돈의 지불은 진정한 용서에 유효하지 않고, 용서는 진정으로 회개하고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는 사람들에게는 값없이 주어지기 때문에 인간이 행하는 면죄는 필요 없다는 것이 후스의 주장이었습니다. 콘스탄틴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하여 아주 먼 길을 떠납니다. 그의 고향인 체코의 프라하에서 길고 긴 여행입니다. 그가 그 먼길을 간 이유는 오직 하나 “죄는 사람에 의해서 용서받을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교황도 사람의 죄를 용서할 능력이 없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붙잡혀 화형을 당했습니다.
마틴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켰을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베드로 성당을 건립하기 위하여 면죄부를 팔때입니다. 그때 교황청이 그에게 물었던 것은 바로 존 후스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를 화형시킨 ‘콘스탄스 공의회’의 결정을 존중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상 너도 그렇게 될 수 있다라는 협박이었습니다. 그때 마틴루터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당시 교황의 권위는 황제가 잘못했다고 밖에서 삼일간 무릎꿇고 빌어야 했던 시기입니다(카녹사의 굴욕)
서서히 저의 방에 있는 마틴루터상이 부담스럽게 다가옵니다. 발끝도 따라갈 수 없는 위대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금요일 6시에 미주복음방송에서 생방송으로 PUCUSA총회소식을 알려주면서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이번 총회의 결정은 교회가 동성결혼에 대해서 인정하고 목사는 동성결혼 주례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결혼을 인정하려면 법을 고쳐야 합니다. 그래서 늘 법과 질서를 중요시 여기는 PCUSA교단은 먼저 법을 고쳤습니다. 그것은 결혼에 대한 정의를 바꾼 것입니다. 결혼의 정의는 한 여자와 한 남자와의 결합이 아닌 두사람의 결합으로 말입니다. 참 지혜로운 분들입니다. 먼저 법을 만들어 놓고 일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PCUSA는 법과 질서가 서 있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목사들에게 요구하는 일도 법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인터뷰 하기에 앞서 진미애 아나운서가 “목사님 인터뷰 하셔도 괜찮겠느냐?” 고 사전에 먼저 물었습니다. 내 신앙의 양심에 따라서 말하는 것인데 뭐가 문제입니까? 라고 말을 하고는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다행히 고태형목사님(선한 목자 장로교회)께서 미리 알려주신 것이 있습니다. 그건 목사가 성경에 입각한 신앙 양심에 따라서 고백한 내용에 대해서는 교단에서도 문제삼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이 답답해 옵니다. 성경에 있는 말을 하는 것도 눈치를 보아야 하는 시대입니다. 성경에 반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도리어 고개들고 뻣뻣한데, 마틴루터가 아닌 목사는 어깨가 위축되어만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