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님이 주신 메일에 ‘세월호’ 참사에서 배를 가장 먼저 버린 선장을 언급하시면서 ‘책임과 유기’라는 표현을 쓰셨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쉽게 하는 말 중에 ‘모두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건 가장 순수한 인간 본성의 말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미국에서 고생하며 살아왔던 이유도 사실 세계를 변화시키겠다는 거창한 마음이 아닌 모두 ‘먹고 살기 위해서’라고 이야기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사실 미국에 감사했던 내용도 그것이었습니다. 미국 생활, 너무 힘들고 어려울 때, WIC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쿠폰을 얻고 우유도, 치즈도 그리고 달걀을 구입해 먹었던 것은 늘 미국에 빚지 자의 마음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다라는 표현은 사실 우리들 뿐만 아니라 범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강도짓하고 못된 짓 한 이유는 모두 ‘먹고 살기’위함입니다. 방법이야 나빴지만 그들에게 물으면 아마 ‘먹고 살기 위해서’라고 말할 것입니다. 걸리지 않았다면 문제 삼을 수도 없습니다.
세월호의 선장도 아마 먹고 살기 위해서 그랬을 것입니다. 어쩌면 젊은 날에는 ‘마도로스’의 꿈이 있었는지 모르지요. 아마 청춘의 꿈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가정을 이루고 자녀들이 태어나면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닌 먹고 살기 위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선장은 배가 침몰할 때 살기 위해서 탈출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선장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그것은 그가 그 배의 선장으로 있는 한 ‘먹고 살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한 가지 더 해야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 배에 오른 손님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이 일은 의무에 해당하지만 사실 배가 침몰하기 전까지는 굳이 따질 필요가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많은 일들은 침몰하기 전까지는 굳이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침몰하기 않았다면 그가 하선할 때, 다른 사람들 눈에는 마도로스의 꿈을 이룬 멋진 선장의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배가 침몰할 때는 달라집니다. 배가 기울기 시작하는 순간 그에게 우선되어지는 것은 먹고 살기 위한 것이 손님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책임지는 자리는 손님들이 다 안전한 것을 확인하는 순간까지 이어집니다.
저에게 메일을 보내신 교우는 아주 단순하게 쓰신 글인데, 저에게는 깊이 다가온 ‘책임과 유기’
‘유기’라는 단어는 버렸다 라는 뜻입니다. 방치했다 라는 뜻입니다. 목사는 돈받고 예수를 믿고 교인들은 돈내며 예수를 믿기에 사실 목사에게는 책임만 있지 유기할 능력은 없습니다. 교인들이 책임지라고 하면 책임을 지어야 하지만 스스로 책임을 유기할 능력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돈 때문이 아닙니다. 목사는 ‘먹고 살기 위해서’하는 짓(?)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부터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교인들도 목사가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김종우 선교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가슴이 저미어지는 것은 그가 먹고 살기 위해서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일 것이고, 강명관 선교사나 말씀을 전해주실 이태후 목사님의 삶의 모습에도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짓이 아닌 것을 알기에 우리의 그분들의 삶에 머리를 숙이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우리도 마찬가지로,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짓이었다고 말 못할 곳이 있습니다. 하나님 심판대에 섰을 때 그때 주님은 우리에게 뭐해서 먹고 살았느냐고 묻지 않으시고 뭐하다 왔느냐고 물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