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컬럼

설교/컬럼

제목비가 오면2024-02-07 09:54
작성자 Level 10

토요일부터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가 있었습니다. 비가 온다고 하면 그때부터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마 캘리포니아에 이젠 가뭄이 해소되려나 하는 마음이 가장 클 것입니다. 비가 어릴 때는 참 싫었습니다. 홍수다발 지역인 낮은 저지대에 살면서 지하실에 들어오는 비를 퍼 나르는 일을 아주 오랫동안 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해인가는 지하실에 쌓놓은 연탄이 모두 비에 젖어 그것을 처리 하는데 대략 열흘정도가 걸린 적도 있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입니다. 비가 많이 내리면 중량천 뚝에 올라가 물이 범람하면 어떻게 하지 하곤 걱정했었습니다. 그러다가 하천 공사를 대대적으로 했던 때부터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더 이상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공사를 진행한 국회의원이 5선을 내리 했습니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그랬겠지만 어렸을 적에는 비보다 눈을 더 좋아했었습니다.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분들은 유난히 첫눈에 대한 추억이 많아서 였는지 영화속에서도 흔한 내용이 ‘첫눈내리면 어디서 만나자’것이었지요. 요즘은 핸드폰 때문에 그런 낭만은 더 이상 없어졌습니다. 나이가 들면서부터 눈이 온 후에 세상이 하얀 것은 잠시이고, 눈이 그치고 얼마 지나면 참 귀찮고 더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은 미끄러워지고, 도로에 눈을 녹이기 위하여 염화칼슘을 뿌리면 눈이 녹으면서 색깔은 흉물스러워 집니다.

비가 좋아지기 시작한 것은 군대 가면서부터 였던 것 같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훈련을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전투경찰이 되었을 때, 비가 많이 오면 대학생들도 데모를 하지 않아, 그때는 영내에서 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졸병이 하는 일중에 하나가 일기예보를 고참에게 알려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비가 오고 난 후 햇살이 비칠 때 세상을 보면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곤 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씻겨 내린 후에 내리는 깨끗함입니다.

캘리포니아에 오면서 비가 더 좋아지기 시작한 것은 일년에 비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몇 차례 안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10여년에 걸친 너무 오랜 가뭄 때문입니다. 캘리포니아의 날씨가 좋다고 하지만 이렇게 비가 안 내리면 어떻게 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 비만 오면 행복해 밖으로 나가곤 했습니다.

비만 오면 미국에 와서 생긴 버릇 중에 하나가 벽난로를 지핀다는 것입니다. 벽난로에 떼는 나무는 다른 것이 아닌 크리스마스 츄리로 장식했던 나무입니다. 동네에 크리스마스가 끝난 후 버리는 나무를 가져다가 잘 말리면 너무 좋은 땔감이 됩니다. 쓰레기통 옆에 세워져 있는 나무를 낮에 가져오기는 뭐해서, 밤에 가서는 어깨에 짊어지고 옵니다. 벌써 두 개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것 갖다 놓으면 집이 흉물스러워 지지만 저는 많은 것을 얻은 듯한 행복한 미소가 듭니다. 대략 열흘정도 밖에 두면 나무가 마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말라진 나무를 잘라 땔감으로 씁니다. 너무 말라 ‘탁탁’ 소리를 내며 타면서 크리스마스 츄리 특유의 나무냄새가 나면 세상 어느 누가 부럽지 않습니다.

주변에 비가 오면 힘들어 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오랜 기도처럼 캘리포니아에 비가 더 많이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가뭄이 좀 해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비가 오는 소리를 올해는 좀 더 많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비가 몇 번 더 온다하니 나무를 더 주워 와야 할 것 같습니다.    

댓글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