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와서 12월이 되면 처음에 했던 일이 크리스마스 츄리가 잘 장식된 집들 앞에 가서 사진을 찍는 일이었습니다. 그때는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즐거웠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 사진은 그런 집 앞에서 포즈를 취한 것들이었습니다. 감히 어디를 갈 생각도 못했지만 그래도 미국의 12월은 이 나라가 기독교 국가는 맞나보다는 생각을 심어 주었습니다.
미국교회는 크리스마스에 전통적으로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다. 한국은 반대입니다. 기를 쓰고 크리스마스에는 예배를 꼭 드립니다. 그날이 어떤 요일이건 말입니다. 그래서 처음 미국에 와서는 예배드리지 않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올해처럼 주일날과 크리스마스가 겹친 날은 아예 주일예배를 드리지 않는 교회도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한국 정서로는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그런데, 미국 문화를 보니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가족이 모이는 참으로 좋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에는 온가족의 소식들이 서로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 미국생활이 익숙해 질 즈음에 크리스마스에 무려 다섯 번이나 방문했던 곳이 있습니다. 제가 은퇴하면 살고 싶은 지역이기도 한곳입니다. 바로 Idlewild라는 곳입니다. 사는 곳에서 차로 가면 1시간 30분 정도 되는 곳입니다. 아이들에게 눈썰매를 태워주고 싶은데, 갈 돈은 없고 미국에서는 눈 있는 곳이면 그냥 타면 된다는 말에 친구목사에게 소개받은 곳이었습니다. 그때 한국에서 왔던 모든 아이들을 데리고 눈썰매를 타러 가서 하루 종일 정말 신이 나게 놀았습니다. 익숙해지고 난 후에는 그곳에서 청년부 겨울수련회를 했었습니다. 벌써 10 여년 전의 일입니다. 조성우 목사님이 첫 부임했던 해이기도 합니다. 청년들 20여명이 모여서 놀다 온 수련회입니다. 커다란 벽난로 앞에서 청년들은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 커플이 결혼을 하였습니다. 우스게 소리로 진정한 사랑의 교회는 오렌지연합교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갔던 수련회 장소에 예약을 해서 온가족이 시간을 보내며 왔습니다. Idlewild는 아주 소박한 백인들이 사는 지역입니다. 나무떼며, 살아야 하는 지역입니다. 집값이 그때는 무지하게 쌌었습니다. 그래서 허물어져 가는 집 하나 사서 때때마다 와서 고치며 지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강명관 선교사의 아이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낸 곳이 그곳입니다. 이맘때 손님이 오면 늘 모시고 가던 곳입니다. 가면 김치병 만한 솔방울들을 원 없이 가지고 와서 그 향을 맡을 수 있도록 선물을 주곤 하였던 곳입니다.
크리스마스에 아이들이 와서 같이 예배 못드리는 다는 교우들의 말을 들으면서 지금 저의 형편을, 그리고 앞날을 생각합니다. 저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얼마동안은 그곳에 올라갈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젠 가족이 다 모여서 크리스마스를 보낸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좀 더 시간이 지나가면 크리스마스가 더 기다려질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들의 아이들이 그때쯤이면 집으로 돌아와서 같이 시간을 보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다 커서 예전 어릴 때 기억하며 ‘우리 아버지 좋아하는 Idlewild에서 우리 모이자, 커다란 벽난로 앞에서 기타 하나 갖다놓고 아버지 좋아하는 노래 부르며 우리가 그렇게 보내자’ 그렇게 말하면 더욱 좋구요..... 그냥 꾸어보는 미래입니다.
오늘은 더욱 큰아들 예석이가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