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가정사역을 감당하는 CMF선교회에서 선교사님 한분들 파송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배때 기도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제대로 아는 분이 아니기에 가시는 선교지, 그리고 가족 관계등을 다 조사하고 기도 준비를 하였습니다. 순서를 맡게 되면 모두 원고를 쓰는 편이라 기도도 다 써서 준비를 하였습니다. 워낙 기도를 많이 하는 단체이다 보니 이미 은혜가 예배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기도하는 것이 아닌 성령님이 하시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난 후 한분이 저에게 다가 오셔서, 복음방송에서 하는 중보기도를 맡아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지금은 스페인선교사로 나가신 복음방송 사장이셨던 박신욱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렇게 복음방송과의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거절했습니다.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방송이다 보니 긴장감이 보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몇 번의 거절 끝에, 그럼 딱 한번만 해보고, 안되면 하지 말라는 말씀에 그럼 딱 한번 해보자 생각했습니다. 첫 방송을 하면 보통 전화가 오지 않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분에게 전화하는 것이 청취자도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날 밤을 꼬박 새우다 싶이하고 기도제목들을 뽑았습니다. 당시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전화가 오지 않으면 그 기도하고 끝내려고 했는데, 첫 번째 준비한 기도가 끝나자 전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전화 받고 기도를 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올해 8년째 되어 집니다.
4년 동안은 월요일에 방송을 했습니다. 목사는 월요일이 공식적으로 쉬는 날입니다. 거기다가 미국의 대부분 공휴일도 월요일입니다. 거의 4년동안 쉬지를 못했고, 아이들이 쉬는 날 같이 하지를 못했습니다. 생방송이다 보니 미리 다 준비하고 기도하고 들어가야 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요즘은 덜 하지만 그때는 들고 들어가는 기도제목과 멘트까지 모두 작성한 종이가 Letter용지로 열장이 넘었었습니다. 그것을 주일날 밤부터 준비하고, 신문을 읽고, 북한 관련된 자료 모으고 하다보면 새벽이 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힘이들어 두 번 못하겠다고 하니까 4년이 지나서 목요일로 옮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작년 7월에 오렌지카운티로 방송국도 이전되었습니다.
8년이 되어가니 많은 분들이 복음방송을 통해서 저를 알게 되었고, 얼굴은 몰라도 목소리는 기억하는 분들이 많아 졌습니다. 제 첫 기도의 시작인 ‘참으로 존귀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많은 분들이 좋아한다는 표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익숙함에서 오는 것인가 봅니다.
어느 순간부터 복음방송의 문제는 저의 문제로 다가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는 복음방송이 몸의 한부분이 되었습니다. 재정이 부족하다고 하면 교회가 부족한 것처럼 아프고,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렇게 가슴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사장이 안 계시는 상태로 마침 안식년이신 고승희 목사님이 임시로 사장직을 맡고 계십니다. 사례비 한 푼 없이 목사님 사비 털면서 방송국 정상화를 위해서 애쓰고 노력하십니다. 그렇게 하려고 해도 쉽지 않은 일들을 감당하십니다. 직관력과 조직력이 대단하십니다. 흔들거리던 방송국이 임시 사장체재인데 정상적으로 돌아왔습니다.
사실 저희 교회는 방송국과 함께 성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방송을 들으시고 오신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빚진 마음으로 방송국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