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은 한국에서도 지냅니다. 알려진 것은 일제시대때 제정되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교회의 절기로 시작된 것도 1914년부터입니다. 그때 추수감사절의 날짜를 11월 18일로 정했었습니다. 그때 감사절의 이유는 선교사들이 조선에 복음을 전해주는 것을 감사하는 의미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의 추수감사절도 지킨지 100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교회는 미국의 추수감사절이 한국에 유래가 되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추수감사절은 미국의 추수감사절과 마찬가지로 청교도 정신, 인디언들과의 아름다운 축제, 그리고 한해를 인도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에 감사절을 지키자고 건의한 것은 1904년 아직 교회가 태동한다고 볼수도 없었던 시기입니다. 1907년의 평양대부흥운동이 일어나기 전이었습니다. 그때 중국 심양의 작은 방에서 로스선교사에게 복음을 받은 서상륜, 서경조 형제가 한국말로 성경을 번역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복음을 들고 다시 조선으로 와서 소래에 소래교회를 세웁니다. 장로였던 서경조 장로님이 1904년 연합회의 때 처음으로 감사절을 제안합니다. 당시의 글을 그대로 옮깁니다.
全國 敎會에셔 一年에 一次式 感謝하난 日을 作定하난 問題에 對하야 徐景祚長老가 演說하기를 我國敎會가 比前 旺盛한 것이 天父의 恩惠인즉 一 感謝日을 定하고 一年에 一次式 悅樂하며 感謝하난 거시 甚合하다 하고 其後에 梁甸伯·金興京·邦基昌·韓錫晋 諸氏가 繼續 說明하다." (죠선 예수교장로회 공의회 제4회 회의록. 233쪽 (이하 공의회록으로 기재)
서졍조 장로님의 감사절 제안은 우리로 먹고 살게 해주셔서 감사하자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 한국 교회가 성장한 것이 하나니의 은혜임을 알고 감사하자고 한것입니다. 그랬습니다. 감사의 첫째 조건이 있다면 우리를 살려주신 것입니다. 4천년동안 하나님 없이 살던 민족을 구원하여 주신 은혜입니다.
작년에 이어 추수감사절 헌금이 밖으로 나갑니다. 작년에는 14개 교회에 보냈습니다. 1천불씩 10교회, 그리고 500불씩 네교회가 나갔습니다. 참 좋은 기억이었습니다. 올해는 추수감사절 헌금의 2/3이 북한으로, 그리고 1/3은 작은 교회에 보내게 됩니다. 교회가 여유가 있어서 그러는가 그것은 아닙니다. 여유가 있으면 한다는 것은 이미 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여유가 있을 수 있을까요? 사람은 늘 들어오는 정도에 삶을 맞추기 때문에 돈이 들어오면 그것으로 써야 할 일이 생깁니다. 이런 일은 작정하고 달려들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지난 15년의 미국생활을 생각합니다.
감사할 조건이 더 많아졌습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의 그 어려움은 없어졌습니다. 홈타운 뷔페에서 한달에 한번만이라도 가족과 식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운영하는 WIC프로그램을 통해 food stamp를 받아 음식을 바꾸어 먹던 때도 지났습니다. 아이들이 다녔던 Whitaker 학교의 교장선생님, 그리고 아이들을 유난히 사랑하셨던 솔로몬 선생님이 우리 아이들이 미국에서 잘 정착하도록 아주 오랫동안 친구가 되어 주셨었습니다. 좋은 교우들을 만난 것도 감사입니다. 그래도 가장 큰 감사는 서경조 장로님의 고백처럼 “하나님 나같은 것을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외침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