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날 밤에 왠지 잠이 오지 않아, 뒤적뒤적 거리다가 아침을 맞이 하였습니다. 교회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간 교회는 다행히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싶었습니다. 교회 철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왠지 익숙한 차가 한 대 서 있습니다. 이상한 것은 교인의 차가 서 있는데, 철문을 닫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부이신 두 분이 움직이는 것이 보입니다. 아는 척을 하려고 하는데, 두분다 입에 페이트칠할 때 쓰시는 마스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일부러 사람들 없는 시간에 오셨구나 라는 생각에 조용히 차를 돌려 밖으로 나오고 시간을 봐서 철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교회 주차장 건너편 주택가 어귀에 차를 대었습니다. 두 분은 열심히 무엇을 하시는지, 두 손에는 봉지를 들고 움직이십니다. 무엇인가를 하시고는 뒷정리를 하시는 모습입니다. 정신없이 움직이시길래 제가 들어왔다 나가시는 것도 보지 못하셨습니다. 두분다 철문이 열리는 소리, 닫히는 소리를 듣지 못할 만큼 귀가 안 좋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 순간 눈물이 콱 하고 쏟아 졌습니다. 교회 일에 무슨 말씀을 안하시는 분들, 늘 조용히 예배만 드리고 가시는 두분이 월요일날 아무도 모르게 교회에 오셔서 본인들이 감당하셔야 할 일을 하고 가십니다. 가서 아는 척을 할까 고민하다가, 대신 칼럼으로 인사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랬습니다. 눈에 보이게 일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숨어서 애쓰고 노력하고 티내지 않으려고 애쓰시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늘 어떤 일을 앞두고 기도하다 보면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씀 “우리가 목사님 위해서 기도하고 있어요”라는 말씀처럼 위로되는 이야기가 어디 있을까 생각되어 집니다.
화요일에 김기순 집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어려운 부탁인데 들어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이시냐고 했더니 형님이 돌아가셨는데 장례를 집례해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드린다고 했습니다. 한 번도 장례집례만큼은 거절한 적이 없습니다. 오죽 어려우면 저에게 부탁할까 생각되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약속도 장례식 때문에 그렇습니다 라고 말씀드리면 그것만큼은 모든 분들이 이해하셨습니다.
사실 집사님이 수고하실 일이 아니었습니다. 돌아가신 형님에게는 자녀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집사님의 수고하심 속에서, 권사님의 헌신 속에서 가족애가 무엇인지를 보았습니다. 저에게 다른 사람들 불편하지 않도록, 허물이 혹이나 조금이라도 들어나실까봐 조심조심하시면서 부탁하시는 것에 도리어 죄송하고 감동이 되었습니다.
설교를 위하여 고인의 약력을 보면서 참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분의 삶의 여정도 보았습니다. 조국을 위하여 애쓰고 노력했던 삶, 그리고 이 땅에 이민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애쓰고 노력했던 삶의 흔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누가 알겠습니까? 30년 전에 혹은 40여년 전에 수고한 어떤 것도 기억하는 젊은이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삶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장례식장에 소위 말하는 Old timer들이 모이셨습니다. 이민사회에서 열심히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노력하고 애썼던 분들입니다. 예전 어른들은 이름만 들으면 기억할 만한 분들이지만 저에게는 모두 생소한 분들입니다. 지나간 자리에는 그곳을 소중하게 가꾸었던 분들의 삶의 흔적이 보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그래도 살만하고 아름다운 것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