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에서 야구를 했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더 이상 야구를 하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왔는데, 같은 반이 되었습니다. 운동을 워낙 좋아하다보니 금방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머리가 좋았습니다. 한번 읽은 것, 들은 것은 거의 잊지를 않아서, 운동을 중간에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적은 늘 상위권을 유지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반에서 늘 껄렁껄렁 거리던 아이와 시비가 붙었습니다. 운동을 했지만 늘 얌전하던 친구였는데, 시비가 붙자 큰 사건으로 번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사이엔가 학교의 소위 말하는 주먹이 되었습니다. 주일날이 되면 라면을 들고 와서 집에서 끓여먹고 늘 같이 놀았는데, 그러던 시간이 줄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얌전하고 목사의 아들로만 있었던 저였기에 그 친구와 어울릴 수도, 그렇다고 주일날 늘 예배 끝나면 집에와서 라면을 같이 끓여먹는 관계인데, 끊을 수도 없었습니다. 점심시간이면 늘 둘이서만 밥을 먹었었는데, 원치않는 아이들이 같이 밥을 먹기 시작하자, 그 친구들이 쓰는 용어(?)등을 견딜 수가 없어서, 어느날 “나는 점심은 따로 먹는 것이 좋겠다”라고 선언하고 점심을 같이 먹지 않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는 둘도없는 친구로, 그러나 학교에서는 같이 있는 다는 것이 불편한 관계가 되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내가 원했던 대광고등학교에 그 친구가 진학을 했고, 저는 용문고등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둘다 장안동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에 저는 학생회 회장, 그리고 그 친구는 총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인기가 많았습니다. 늘 깨끗한 매너에 말이 없었습니다. 교회에서는 전혀 티를 내지 않았지만, 알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때 이미 주먹세계로 깊이 들어갔다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고등학교 졸업후에 각기 헤어졌습니다. 헤어지기 전 저와 그 친구는 아주 지독하게 싸웠습니다. 그 싸움으로 6년 우정이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 친구가 그런 세계에 들어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고, 그 친구는 목사아들인 저만은 자신을 이해하리라 생각했다가 그 삶을 받지 못하는 것에 고통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랜시간이 흘렀습니다. 지난 한국에 갔을 때 교회 친구들이 “혹시 그 친구의 소식을 아느냐고 하면서 넌지시 연락처를 주었습니다. 늘 마음 한켠에 이상한 빚진 마음이 있었던 친구입니다. 비행기를 타기전에 전화를 했습니다. 대략 10여분의 통화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근황을 묻고 저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놀랍게도 누이가 LA에서 ‘조선명주’라는 옷가게를 하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방송을 갔다가 찾아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동생의 소식을 알려 주었습니다. 기도를 부탁한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그 친구를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친구가 교회를 떠난 이유는 가장 고통하고 있을 때 붙잡지 않은 저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당시 그때 저도 그런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추석즈음에 갑자기 카톡이 왔는데, 그 친구였습니다. 가족사진을 보냈습니다. 그것도 아주 여러 장의 사진을 말입니다. 오래전 내부모님, 네 부모님 가리지 않고 지냈던 이야기부터 해서 따뜻한 글을 보냈습니다. 그때 왜 날 안잡았느냐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이야기만 받았습니다. 저도 그때 아픔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가족 사진을 보냈습니다.
이제 가족을 두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도 교회 다니도록 말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하나님이 회복시키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때 좀더 기다려 줄걸 했던 마음의 빚을 기도로 갚으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