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은 여러 가지로 마음이 복잡한 날이었습니다. 한국은 월요일인 주일날 오후 7시경에 큰아들 예석이가 논산훈련소로 입영 하였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마음은 온통 6시에 통화할 예석이에게 가 있었습니다. 같이 한국에 있었더라면 그렇게 마음이 어렵지는 않았을 텐데, 같이 가지 못한다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더했습니다. 아이가 결정했다고는 하지만, 저의 권유를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인 것도 알았기 때문입니다. 집사람도 하루 종일 심란해 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교회는 공동의회를 해야 했고, 사실 15년 미국목회에 회의를 제때 끝내지 못하고 정회하는 일도 처음 이었습니다. 좀 더 잘 준비했어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날 새가족실에는 새로운 분이 어른만 여섯분, 나중에 인사하러온 2세 청년들끼지 9명이었습니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오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종잡을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나중에는 예석이가 오늘 군대를 간다는 생각마저도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집사람이 오늘은 밖에서 밥 먹고 들어가면 안 되겠냐고 했습니다. 저는 주일날 지친 저를 생각해서 한 말인 줄 알고, “괜찮다. 집에 가서 먹자”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오후를 정신없이 보내면서 아들을 군대 보내는 엄마의 마음이 집에 가서 밥 차릴 정신이 없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석이 군대 가는 길에는 제 막내 동생과 제수씨가 같이 동행했습니다. 의외로 씩씩하게 전화를 받고 걱정하지 말라고 도리어 위로합니다. 아들과 통화 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통화하던 집사람이 의외로 동서와 통화를 하면서 돌봐줘서 고맙다고 하더니 그때부터는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웁니다. 아마 집사람의 울음소리가 옆에 있던 예석이에게 전달되어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시 둘이서 통화 할때는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합니다.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어서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고 말았습니다. 그날 식사는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울다 지친 아내는 침대에 누워 그냥 잠이 들었고, 그런 사람을 깨워서 밥 먹으러 가자고 말할 자신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제가 근무했던 군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편할 것입니다. 구타도 없을 것이고 얼차레 라고 불리웠던 심한 기합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어도 좋습니다. 한사람의 잘못 때문에 동기들이 같이 기합을 받으면 익혀지는 공동체 의식! 개인적인 성향이 유난히 강한 미국에서 자란 예석이에게 좋은 경험이라 생각되어 집니다. 그리고 한국말도 완벽해져서 돌아올 것입니다. 아마 살도 빠지지 않을까 생각되어 집니다.
요즘 집사람은 조금 예민합니다. 운전을 하면서 맑은 하늘이 가을인 것을 나타내길래 “벌써 가을이네, 너무 시간이 빨리 가지?” 라고 했더니 예석이 생각하면 시간이 빨리 간다고 말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군대에 가면 참 시간이 빨리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 간다”라는 말이 군대에 있을까요?
예석이가 군대가는 날 방송에서 고위공직자 자녀들의 병역기피 문제가 나왔습니다. 영주권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이해됩니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군대를 아버지가 고위공직자이기 때문에 가는 것도 역차별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예석이에게 누군가 너희 아버지도 고위층이냐 물으면 우리 아버지는 “저위층”이라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뜻도 모르는 녀석이 웃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