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신은 세상살이나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가져야 할 몸가짐과 태도를 말합니다. 예전에는 어른들이 자녀들에게 참 많이 하신 말씀입니다. ‘처신’을 못할 때 쓰는 말이 바로 ‘채신’입니다. 채신머리 없다는 말은 처신의 낮은 말입니다. 처신을 잘못한다는 말입니다.
‘처신’은 우리의 흔적입니다.
이사를 여러번 갔지만 미국에서 살았던 17년 대부분 Buena park에만 살았습니다. 교회도 지역만 달랐지 대부분 같은 분들과 시간을 보냈습니다. 동창회는 일년에 한번 얼굴을 내밀면 잘 간 것이었고, 교회에만 있었습니다. 아는 사람도, 알아줄 필요도 없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굳이 처신을 이야기 할 형편도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09년부터 복음방송에서 중보기도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우연찮게 시작된 일입니다. 어느 모임에 가서 대표기도를 했는데, 마침 그 자리에 복음방송 사장이셨던 박신욱 목사님이 한번 해보라고 하셨던 것이 이제 8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한 5년했나 싶었는데 말입니다. 제가 보기에 방송하기 전이나 방송을 한 후나 기도가 달라졌는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자주 쓰는 기도적 언어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중보기도하면서 시작되었는가 그렇지 않았습니다.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만나면 안될 사람들 만나지 않게 해주십시요”라는 만남의 축복은 2001년 목회하면서부터 쭉 하던 기도였습니다.
“고통의 날수를 감하여 주옵소서” 이 표현은 1996년 북한을 위해 기도하면서부터 통일의 날수를 감하여 달라는 기도를 시작하면서부터 쓴 것입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려가듯 그렇게 진행되게 해 주십시요”라는 표현은 지금으로 20여년전 선교대회를 여러번 진행할 때, 진행기도를 인도할때마다 썼던 표현입니다. 그런데, 방송이 나가면서 부터는 그런 표현들이 신선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똑같은 기도인데 반응이 달랐습니다. 감사하게도 아직까지 방송국에서 그만두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습니다.
중보기도가 나가면서부터 얼굴은 몰라도 목소리를 알아보는 분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3년 전부터 목회자 세미나에 스텝으로 섬기기 시작했고, 지난해부터는 주제 하나씩을 맡아 강의도 했습니다. 수십명의 목사님들 앞이라 떨리기도 했지만 얼굴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저는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분들은 저를 기억합니다. 이게 참 힘든 일입니다. 요즘은 목사님들 모이는 곳이 부담스럽습니다. 저를 보았다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저를 아는데, 저는 그분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저를 아신다고 하는 순간부터 마음이 어려워 집니다. 그분은 자연스럽게 ‘처신’하시는데 저는 그때부터 ‘처신’이 어려워 집니다. 사람들 앞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참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그 사람의 행동이 다 드러나는 시대에 말입니다.
‘처신’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눈을 마주치는 것, 고개를 숙이는 것, 악수하는 것...
참 감사한 것은 숨구멍이 있다는 것입니다. 편한 옷차림으로 있어도 괜찮은 집이 있고 가족이 있다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편안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드릴 하나님 아버지가 있어서 좋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처신을 따지지 않습니다. 그냥 소리 지르며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