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을 받고 헌신하는 종류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아주 많이 듣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 매맞아서 할 수 없어 목회자의 길로 들어선 캐이스입니다. 아주 많은 분들의 간증에 들리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제 주변에는 늘 반대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한분이 이용희 교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께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 세 번을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미국에 있을 때, 그리고 선교단체에서 그분을 섬길 때에도, 아주 오랫동안 기도하실 때는 그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거절하셨습니다. 섭섭했다고 합니다. 저도 생각에 목회자가 되시면 했는데 돌이켜 보니 그것이 더 좋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신 예수 그렇게 설렁설렁 믿던 이용희 교수님의 형님이 목사가 되었습니다. 안과의사인데, 목사가 돼서 목회를 하는 것이 아니고, 복음을 들고 진료하러 다니는 삶을 삽니다.
다른 분이 있습니다. 조문상 선교사입니다. 모두 90년대 초반부터 같이 교제하며 지내던 분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뚱뚱하지만, 전에는 더 했습니다. 전혀 예수를 안 믿던 분이 미국에서 예수 믿고 한국으로 돌아와 교수를 하며 선교단체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밤에 철야할 때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무릎에 쥐가 나서 몸을 비트는 모습도 좋았습니다. 그렇게 1992년도에 서로 만날 때 저도 예수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두 불 같아서 늘 기도하며 비젼을 나누었습니다.
조 교수는 섬기던 단체 선교담당 총무가 되어서 선교를 같이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건축학과 교수다 보니 꼼꼼하기도 말도 못할 정도인데다가 프로젝트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같이 다니다 보면 참 배울 것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같이 중국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같이 미국에서 공부하다가 예수님 만난 분들이 연변과기대 교수로 가게 되었고, 저도 같이 기도하던 모임의 권오병 교수가 연변과기대 교수로 가 있어서, 연변과기대와 주변의 교회에 일대일 성경공부를 보급하기 위하여 같이 움직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간 선교에서 팀원 간에 불화를 일으키는 사단의 역사도 경험하였고, 그렇게 불화를 일으키고 문제를 일으킬 때 어떻게 영적으로 반응해야 하는지도 배웠습니다. 선교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정확하게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귀신의 역사가 무엇인지도 실체를 보았습니다. 영적 싸움이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다는 것을 배웠던 시간입니다. 그렇게 복된 시간을 여러 해 보내다가 어느 순간에 하나님이 흩으셨습니다.
매주 모이던 분들이 몇 년 후에는 각기 제 갈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조문상 교수는 건축학과 학과장, 온누리 교회 평신도 선교사 책임자로, 이용희 교수는 KDI와 학교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미국으로 바로 오기 직전에 조문상 교수는 평생 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그분의 능력을 아는 총장이 3년 동안 월급주고 기다릴테니, 3년 동안 고민하고 그때 결정하라고 하는데도, 그것을 붙잡으면 선교지에서 돌아올까봐 그 조건을 거절하고 나아갔습니다. 막상 선교지로 나간다 할 때, 그것을 반대 하셨던 분은 소천하신 하용조 목사님 이셨습니다. 그때 조 선교사가 하목사님께 드린 말씀은 “목사님이 그렇게 가르치시지 않으셨습니까?”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16년이 흘렀는데, 여전히 만나면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오면 냉장고 열고 먹고 싶은 것 먹고 자고 하는 것이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 즐거움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즐겁습니다. “ 내가 제일 잘 결정한 것이 있다면 선교사가 된다고 한거야. 목사 안된다고 한거야” 그 말할 때 제가 도리어 행복했습니다. 조 선교사가 안 된 목사가 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저도 고백할 것이 있는데, 좋아서 신학 했지, 두들겨 맞아 하지 않았답니다. 저도 조 선교사에게 “내가 목사가 된 것이 가장 잘한 선택이야. 선교사 안된다고 한거야” 라고 말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늘 제 등 두들겨 주며 하는 말은 “이만하면 잘하는 거지”하고 격려만 받습니다. 그분을 보면 선교사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을 갖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