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께서 부친상으로 지난 화요일 오전 한국에 가시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한사코 성도님들과 교회에 부담이 되실까봐 다음날 새벽기도까지는 달리 알리지 말고, 교회 홈페이지에 목사님이 직접 소식을 전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소식을 듣고 여러 생각이 오갔습니다. 16년 동안의 기도 끝에 제가 몽골 선교사로 헌신한 그 해 직접 교회를 찾아가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5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지금은 하나님의 품에서 안식하고 계실 그리운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20년간 이런 저런 모양으로 교역자로서 섬겨온 제가 늘 경험하였던 ‘담임목사님의 부재 시에 큰일들이 나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에 기도했습니다. “ 하나님, 아버지... 목사님의 빈자리가 커지지 않게, 성도님들께 어려운 일이 생기지 않게 해 주세요...”
하지만 목사님의 빈자리는 크기만 합니다. 크고 작은 일을 결정하여야 하고 목사님만이 해 주셔야 하는 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요일, 어버이회 회장이신 홍사식 장로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내용인즉 손석길 집사님 부부께서 교통사고를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얼른 전화를 끊고 손 집사님과 통화를 하고 다행히 말씀을 또박 또박 잘 하셔서 다음날 심방 약속을 잡고 구역장이신 최영진 장로님께 보고 드렸습니다. 다음날... 심방하여 뵈오니 큰 외상이 없어서 한시름을 놓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사고를 낸 상대방측이, 사고 난 후 응급차에 실려 가신 두 분과는 상관없이, 혼자 운전하였음에도 이미 증인까지 세워놓고 집사님께 아주 불리하게 조치를 다 취한 모양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역사하여 주시길 함께 두 손 모아 주십시오. 2015년 성탄주일과 주간은 저에게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토요 설교와 주일 설교에 대한 부담감...아니다 다를까 금요일에는 심한 몸살을 앓았습니다.
토요일 갑자기 칼럼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고1말 처음 교회 나간 때가 기억났습니다. 중3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절친한 친구의 어머니 권사님이 간절한 심정으로 저희 어머니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이 종교를 바꾸면 집안에 우환이 생긴다고, 저를 불러 자신을 대신하여 교회를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명을 받들어 교회를 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공교롭게도 성탄전야에 있을 고등부 학생들 선물교환을 한다고 제비뽑기를 하였습니다. 제가 그날 나가지 않으면 제가 뽑은 명단의 여학생은 선물을 못 받을 판국이었습니다. 결국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선물을 하나 사들고 성탄절 이브날, 교회의 행사에 참석하고 고등부 학생들 밤샘 모임에 참석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마음도 추웠던 것 같습니다. 이방인이었습니다. 떡국을 먹고 새벽송이라는 것을 나섰습니다. 소위 저를 전도하여 새가족의 인도자가 된 친구는 신이 나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출발하여 동네 가까이 사시는 장로님, 집사님, 목사님 댁을 방문하며 나지막이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저는 물론 꿀 먹은 벙어리였습니다. 마지막 한 대학부 선배님의 집에 다다라서는 몇 곡을 따라 부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서 만둣국을 먹었습니다. 참 맛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참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뭔지 모르지만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렇게 저는 주님께 한 발자국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2015년 성탄전을 캘리포니아 산타애나에 있는 오렌지 가나안 장로교회에서 맞이합니다. 오는 수요일에는 교육부만의 발표날이 안되었으면 합니다. 타지에서 오거나, 영어권 교회에 다니는 자녀분들이나 손주분들이 낯설어 하기도 하겠지만, 저희 교회 수요일 성탄 축하 예배에 함께하며 주님의 따뜻한 마음을 나누었으면 합니다(다과가 준비된다고 합니다.^^) 멀리 가시는 분들도 있지만, 여전도회나 남전도회에서 가능하신 분들이 팀을 만들어 찬송가나 캐롤로 주님의 마음을 나누어 주셨으면 합니다. 쑥스러워 하는 손주분들의 악기 연주도 좋고, 자녀분들과 가족창도 좋습니다. 영어로 하셔도 좋습니다. 아직 그리 익숙하지 않기도 하지만, 이제는 우리의 모국어가 아닙니까? 월요일까지 여유가 있습니다. 참석가능하신 팀은 저에게 연락을 주십시오. 562-371-7036번입니다. 2015년 성탄절의 추억을 함께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