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관 선교사를 안 것은 1995년 신학대학원에 들어가면서 선교사 파송연구회에 같이 활동하면서 였습니다. 오랫동안 보지 못하다가 2007년도에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10여년 만에 만났을 때 강선교사는 아마존 바나와족을 위한 성경번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늘 미국으로 오면 교제를 나누었는데, 강선교사의 선교를 촬영한 ‘소명’영화를 보면서 한 가지 약속을 했었는데 그 힘든 곳에 꼭 한번 가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4년 전에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때는 강선교사가 먹는 것 같이 먹고 벌레에 물리면 같이 물리고 하는 단순한 마음으로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약속을 하게 됩니다. 성경번역이 끝마치면 다시 한번 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원래는 강선교사를 파송한 교회에서 성경봉헌식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교회 형편이 여의치 않았나 봅니다. 4월에 와달라는 말에 참 여러 가지로 고생했습니다. 올 2월에 영주권이 만기되는데 아시는 것처럼 요즘 갱신하는데도 일 년씩 걸립니다. 작년부터 올해 방문하기 위해 영주권 재신청, 아내는 시민권 신청을 하고, 선교 일정에 인터뷰가 잡혀 일정을 재 조정해야하는 저희 부부딴에는 너무 많은 시간을 준비과정에 보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선교에는 짧게는 11번, 저는 13번 비행기를 갈아타야만 했습니다. 바나와 마을까지 가는 비행기가 적게는 4번, 혹은 5번을 타야 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귀한 분들과의 선교는 즐거웠습니다.
곽병만 장로님은 청년처럼 움직이셨습니다. 심지어 바나와족 사람들에게 머리를 자르는 열정과 헌신을 보이셨고, 늘 기도와 섬김으로 움직이는 이성엽 장로님은 모든 것들이 잘 돌아가도록 하였습니다. 박인숙 집사님은 거의 쉬는 날이 없이 사람들을 환자들을 보아야만 했습니다.
준비해간 라면을 가지고 온 마을이 잔치를 할 때 눈물이 날 만큼 좋았습니다. 그들의 손에 성경이 쥐어진다는 사실이 너무 감격스러웠습니다. 오래전 나무로 만들어진 성전을 고치고 있는데, 마지막 예배 때 그들 스스로 이 성전은 하나님의 것인데, 우리가 애쓰고 노력해서 고치자고 할 때 마치 무너진 성벽을 다시 일으키는 느헤미야와 학개의 외침을 듣는 것처럼 좋았습니다.
얼마나 찬양을 열심히 가르쳤는지 모든 아이들이 찬양을 따라 하였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강선교사 내외가 아니 정확한 것은 사모님이 찬양을 정확하게 가르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제대로 벌레에 물렸습니다. 돌아오는 날까지 온몸이 가려워 참 힘들었습니다. 선교는 참는 것이다라는 것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깨달아야할 만큼 많이 물렸습니다. 아참 궁금들 하시죠? 원숭이 고기 먹어보았습니다. 삐라냐도 먹고 물소 고기도 먹고 대부분 먹었습니다. 악어요? 악어도 잡았습니다. 같은 마음으로 기도해 주셔서 잘 다녀왔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