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지난 토요일에 한국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가신지가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 한 1년이 넘은 듯 아스라이 합니다. 참 기뻐하시고 받은 사랑에 감사해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일이 되었습니다. 교회에 허락받고 쉬는 주일날, 전날부터 어느 교회를 가야 하는가가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오렌지카운티에 산 날들이 16년인지라, 아는 사람 만날까봐 어느 한국교회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아는 교회에 미리 양해를 구하고 참석할 생각도 했었는데 그것마저도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날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를 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말입니다. 교회를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을 말입니다. 어쩌면 교회를 옮기는 분들은 매주일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을까 생각되어 집니다. 목회를 은퇴하고 나면 어느 교회를 나가야 하는가 미리 생각하게 되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LA에 있는 그래도 같은 교단을 나온 목사들이 섬기는 교회에 어정쩡한 10시 예배를 드리고 왔습니다. 그날 밤에 배재 코랄의 음악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들었던 어느 음악회보다 선곡도 그랬지만 마음으로 다가오는 찬양이었습니다. 단장이신 김동천 장로님의 인사말씀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높이는 말씀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으로 끝난 한편의 설교와 같았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참석한 그 모임에서 우습게도 조용히 가서 예배를 드리고자 양해를 구하려던 교회 목사님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고충을 이야기 했더니 우리 교회 와서 예배드리지 그랬냐고 말씀들을 해 주셨습니다.
새벽예배도 그렇고 수요예배도 그랬습니다. 수요예배 때는 동네에 있는 같은 노회 소속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지금 한참 어려움에서 극복하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맨 뒷좌석에 앉아 예배만 드리고 오려는데, 저는 기억에 없는 목사님이 예배 끝날 즈음에 소개를 합니다. 혹이나 또 오해할까봐 “휴가 중이라 예배에 참석했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것도 싫고 해서 “새벽예배를 좀 와서 드려도 되겠습니까?” 양해를 구하였습니다. 교회의 형편이 그래서 그런지 말씀이 미적미적하셔서 그나마도 어려웠습니다.
갈 곳이 없었습니다. 아주 큰 교회에 묻어서 가지 않는 한 한 교회를 섬겼던 분이 다른 곳으로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섬길 수 있는 교회가 있다는 사실에.... 고민안하고 갈 수 있는 교회가 있다는 사실에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떠난 분들도 얼마나 아파했을까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새로 오신 분들도 얼마나 힘들게 결정한 일일까 생각하니 소중하게 다가 왔습니다
존 맥아더 목사님의 ‘갈 곳 없는 은혜’가 떠오릅니다. 지금은 존경받는 목사님이시지만 목회 초반에는 사람들이 무더기로 떠날 때 마다 교회를 떠나려고 했는데 갈 곳이 없어 할 수 없이 남았다고 합니다. 그러기를 몇 번 했는데 갈 곳이 없는 것이 은혜였다 라고 고백합니다. 못생긴 나무가 선산을 지킵니다. 잘생긴 나무들은 이미 배임을 받고 다른 곳을 향해 떠나갑니다. 그러나 오라는 데가 없는 사람은 그냥 그 자리를 지킵니다. 그것이 좋습니다. 갈 곳이 없으세요? 그것이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