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교회에서 주보를 만들 때는 ‘가리방’이라는 것을 썼습니다. 아마 오랜 전에 교회를 다니셨던 분들에게는 잊지 못할 교회 용품이었습니다. 철필로 기름종이에 글을 쓰고 롤러에 잉크를 묻혀 슥 문지르면 주보가 나왔습니다. 학교에서 시험문제도 그렇게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그러던 것이 1970년대 말에 복사기라는 것이 나왔습니다. 혁명이었습니다. 교회마다 복사기가 들어오면서 더 이상 가리방의 즐거움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복사기의 편리를 함을 어떻게 잊겠습니까? 익숙해지면 고마움을 잊게 되지요. 그러다가 가끔 복사기가 고장이 나면 교회는 초비상이 걸립니다. 복사기 회사에 전화를 걸고 시간내에 고치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문제는 주일날 아침에 고장 날 때입니다. 그때는 온몸에 식은 땀이 납니다. 가리방은 사람만 있으면 되었는데, 복사기는 전문기술자가 오기 전에는 무조건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브라질 아마존의 더위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시원한 냉수도,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아닌, 원주민들이 만들어준 부채였습니다. 땀이 비오듯이 오는 날씨에 그나마 비가오면 다행이 시원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작은 부채가 얼마나 시원했는지 모릅니다. 거기서 너무 시원했기에 보물처럼 가지고 왔습니다. 아마존에서 사는 강선교사 같은 분들을 기억하며 이번엔 부채로 이겨나가 보리라 생각했습니다. 지금 그 부채가 어디 있느냐구요? 제가 물어 보고 싶은 것입니다. 도대체 어디 갔을까요? 날이 더워질대로 더워진 지난 화요일 급하게 집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에어컨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선풍기로 일단 견디어라”고 말했습니다. 보통 고장이 나면 온도조절기(thermostat)의 건전지 고장이 문제라 생각하고 쉽게 생각했는데, 그것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밖에 Fan도 돌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날 밤에 고치다가 그냥 잠을 잘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안 온도가 86도까지 올라가는 밤... 아마존 열사의 나라에서 살아돌아온 패기는 어디가고 밤새 더위와 싸우다가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며 지새웠습니다. 선풍기를 틀어놓아도 얼마나 덮던지요. 그래도 인터넷을 뒤지고 유투브를 보면서 연구해서 내부의 판이 과부하로 탄 것을 발견했습니다. 임시로 고친 것은 다른 선과 또 다른 선을 연결해서 내부의 모터를 돌리는 것입니다. 온도가 기준치 이상으로 내려가면 밖의 팬은 멈추지만 실내로 찬공기를 실어나르는 내부의 팬은 전원을 끄기 전에는 여전히 돕니다. 메인보드를 바꾸기 전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더위에 지쳐있던 집사람과 아이들이 저를 보는 눈은 가히 경이적인 눈빛입니다. 불편함이 가끔은 사람을 폼나게 만들기도 합니다. 예배를 드릴 때 늘 프로젝터를 이용하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것이 고장났습니다. 저희 교회는 뒤에서 쏘는 방식이라 돈이 이만저만 크게 들어가는 일이 아닙니다. 예전에는 그것 없어도 예배를 잘 드렸다고 할 수 있지만, 없으니 불편하기 이를 때가 없습니다. 익숙할 때는 전혀 고맙지 않다가 불편해지니 그리운 것들입니다. 사람이 그렇습니다. 익숙하면 고마움을 모르다가 없어지면 그때서야 그 자리를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분을 보내신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떠나고 나니 그제서야 그 사람의 빈자리를 알게되었다구요. 예전 우스게 소리가 맞습니다. “있을 때 잘하세요” |